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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10월 21일, 필립 로링 질레트(Phillip Loring Gillette, 우리말 이름: 길예태[吉禮泰], 1872-1938) 출생, "한국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창설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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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필립 L. 질레트. 선교와 야구”


오늘은 필립 로링 질레트(Phillip Loring Gillette, 우리말 이름: 길예태[吉禮泰], 1872-1938)가 태어난 날입니다. 1872년 10월 21일, 필립 질레트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출생했습니다.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 YMCA 전문학교와 콜로라도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졸업 후 예일대 YMCA 전도담당 부목사로 사역하던 중 한국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창설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질레트는 1901년에 내한하여 12년 간 사역하면서 한국체육 발전과 기독청년회의 기초 확립을 위해 공헌했습니다. 그가 숭실학교 학생들과 YMCA 회원들에게 타구(打球)를 가르쳐 준 것이 한국 야구의 시작이 되었는데, 최초의 경기는 1906년 YMCA 팀과 덕어(독일어)학교 팀과의 시합이었습니다. 질레트는 기금을 모금하여 종로에 YMCA 회관을 건립했습니다. 3층 벽돌 양옥 회관에는 체육실과 강당이 있어 실내 체육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11년 105인 사건이 일어나 많은 지도자들이 구속될 때 질레트는 이것이 일제가 날조한 사건임을 국제선교협의회에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13년 6월에 강제 추방되고 맙니다.


한국에 처음 야구가 들어온 것은 1905년이야. 미국의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이 땅에 처음 야구를 도입했어. 질레트는……우리나라 사람들과 융화하고자 했는데, 그 수단으로 야구와 농구, 복싱 등 운동을 들여왔어. 질레트가 만든 최초의 야구단은 황성 YMCA 야구단이었어. 이 야구단은 1905년 서울 인사동 태화관 앞에서 야구를 했다고 해. 우리나라에서 처음 치러진 야구 경기는 1906년 3월 15일 열린 YMCA와 덕어학교의 경기로 기록되어 있어. 2005년은 한국에 야구가 들어온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어. 한국야구회원회(KBO)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콜로라도 주에 사는 질레트의 외손자인 로렌스 하버드를 초빙해서 공로패를 수여하기도 했어.[이헌재 역, 『야구장 산책』 (서울: 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06), 108.]


필립 질레트 선교사는 추방 후에도 중국의 상해, 남경, 북경 등지에서 YMCA 총무와 외국인교회 목사로 섬겼습니다. 또한 상해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돕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야구와 농구, 스케이트 등을 즐길 때 복음과 함께 스포츠를 전해준 질레트 선교사를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은 죄인의 구원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전인(全人)이 새롭게 되는 데까지 역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스포츠를 대합시다. 운동합시다.


1889년 장로교회의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YMCA 국제부에 한국 YMCA 창설을 위한 재원의 확보를 문의한 일이 있었다. 이것이 한국 YMCA 운동의 효시였다. 얼마 후 아펜젤러는 작은 건물 하나를 전세를 내어 마련하고 YMCA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01년 한국 YMCA 창설을 위해서 국제위원회가 파견한 “젊고 정력이 넘치는 열정적인” 질레트(P. Gillett, 1872-1939)가 외국인 총무로 활동을 개시하면서 그 기초를 닦고 있었다. 마침내 1903년 10월 28일 저녁 8시, 서울 유니온회관에서 “서울 신사들”이 모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게일이 회장(이사장)이 되고, 질레트가 총무가 되어 황성기독교청년회(皇城基督敎靑年會)가 발족한 것이다. 이것이 1914년에 조선기독교청년회 연합회가 되었던 것이다.[민경배, 『한국 민족교회 형성사론』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8),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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