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피터 마터 버미글리, 이탈리아의 기적”
오늘은 피터 마터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499–1562)가 태어난 날입니다. 1499년 9월 8일, 버미글리는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제화공의 아들로 출생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사로 서원한 그는 파두아 대학에서 수학한 후 나폴리의 산 피에트로 아드 아람(San Pietro ad Aram) 수도원 원장으로 선출됩니다. 버미글리는 개혁자들의 작품을 통해 이신칭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나서 스트라스부르크로 건너가 그곳에서 구약학 교수로 활동하다가, 토머스 크랜머의 초청으로 잉글랜드로 자리를 옮겨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에드워드 6세가 죽자, 스트라스부르크로 돌아온 버미글리는 강경 루터파와 갈등을 겪은 후 취리히에 안착합니다.
버미글리의……특징 중 하나는 칭의 교리를 이해하면서 그것을 목회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칭의는 “모든 경건의 머리이자 샘이며 최고봉이다.” 칭의에 대한 버미글리의 가장 자세한 설명은 로마서 11장에 대한 그의 주석에 나타난다. 그는 또한 고린도전서를 강의할 때 1장을 설명하면서 상당한 지면을 칭의 교리에 할애했으며, 창세기 15:6을 강의하면서도 이 교리를 다루었다. 그가 로마서 주석을 쓰면서 칭의 교리를 가장 중요하게 다룬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버미글리는 로마서가 이 교리를 가장 분명하게 가르친다고 믿었다. 이 주제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면서부터 버미글리는 말하기를, 칭의는 “바울이 이제까지 말해 왔던 모든 것의 중심이며 목표이다”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 이유로, 버미글리는 대주교 크랜머로부터 받은 명령, 즉 영국 내에서 종교개혁을 확산시키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가운데 칭의 교리를 강조했다.[Carter Linberg ed., The Reformation Theologinas, 조영천 역, 『종교개혁과 신학자들』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2), 367-68.]
우르시누스는 버미글리의 글이 칼빈·츠빙글리의 것보다 명쾌하다고 했고, 베자는 그를 ‘사보나롤라의 잿더미에서 태어난 천재’로, 칼빈은 ‘이탈리의 기적’으로 불렀습니다. 분명한 어조로 이중예정과 칭의, 개혁파 성찬론을 논한 버미글리는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개혁자였습니다. 반대 속에서 순례의 길을 걸었던 그의 탁월한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출판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버밍글리는 신자들이……떡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진정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살과 피를 마신다고 주장하였다. 이것들은 실체상의 변화를 겪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아닌 그의 몸과 피의 성만찬이 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의 표지(signa)는 성령의 도구로 변형됨으로써 하나님의 보이는 말씀의 위엄으로 들어 올리어진다. 그러나 성만찬은 숭배되고 보존되어야 할 대상(object)이 아니라 일어나야 할 사건(event)이다. 이러한 사건은 믿음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때 발생한다. 그러므로 불경건하게 먹는 것은 성만찬적으로 볼 때 비사건(non-event)인 것이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두 가지 먹는 일이 발생한다. 신자는 입으로 물질적인 상징들을 먹지만, 동시에 동일한 행위로써 그의 영으로 그는 천상의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만찬의 견해의 중요성과 공헌은 “모든 성만찬 교리는 피터 마터에 의해서 왕관이 씌워졌다”는 칼빈의 선언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정성구, 『개혁주의 인명사전』 (서울: 총신대학교출판사, 2001),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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