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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33문 설교 (2)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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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문(계속) 제3계명에서 금지된 죄는 무엇인가?

답 : 제3계명에서 금지된 죄는……….모든 죄악된 저주, 맹세, 서원과 추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함이다. 또 합법적인 경우에 우리 맹세와 서원을 위반함과 불법적인 경우에 그것을 지킴이며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하여 불평함과 시비를 거는 것이며 이를 호기심으로 파고들거나 오용함이며 잘못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것.



1) 관련성구

ㆍ삼상17:43; 삼하16:5; 렘5:7; 22:10 : 죄악된 저주와 맹세

ㆍ신23:18; 행23:12-14 : 죄악적인 서원의 오용

ㆍ에3:7; 9:24; 시22:18 : 죄악적인 추첨의 오용

ㆍ시24:4; 겔17:16-19 : 합법적인 맹세와 서원을 위반하는 것은 죄이다. 

ㆍ막6:26; 삼상25:22, 32-34 : 비합법적인 맹세와 서원을 위반하는 것은 죄이다. 

ㆍ롬9:14, 19-20 :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불평하고 시비를 거는 것은 죄이다.

ㆍ신29:29 :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호기심으로 파고드는 것은 죄이다. 

ㆍ롬3:5-7; 6:1; 전8:11; 9:3; 시39 :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잘못 적용하는 것은 죄이다.



2) 해설

(1) 대요리문답이 말하는 ‘죄악 된 저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요리문답이 말하는 ‘죄악 된 저주’ 란 골리앗이 이방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던 것처럼 어떤 사람을 향한 죄악 된 저주를 의미한다. 이러한 저주는 재앙과 파괴가 저주받은 사람에게 임하게 해 달라는 소원으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소원은 하나님이나 그릇된 이방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재앙과 파괴가 죄악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소위 ‘저주’ 시와 성경의 다른 부분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완강한 대적자에게 심판이 임하게 해달라는 간청이 당연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죄악 된 저주인가? 그것은 발락 왕이 발람에게 원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자들을 저주하는 것이다(민22:6;23:8).



(2) ‘죄악 된 맹세’ 는 무엇인가?

대요리문답이 말하는 ‘죄악 된 맹세’는 일반적으로 ‘신성모독’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서약이나 ‘말로 하는 맹세’ 나 우상 신의 이름으로 맹세함으로 헛되이 일컫는 것을 의미한다. 명백하게도 이는 매우 일반적인 죄이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죄이다.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다. 그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 제3계명을 위반하지 않고는 몇 분 이상 대화를 하지 못할 정도이다. 오늘날 대중적인 책과 잡지들은 신성모독으로 가득하며 ‘최고의 사람들’ 이라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지만 ‘제기랄’, ‘빌어먹을’ 이란 단어들을 사용하여 그들의 말을 강조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말의 신성모독은 물론 부분적으로는 심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신학적인 이유이며, 소위 신성모독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성과 원죄로 인해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으로부터 연원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세상의 말의 습관과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3) 완곡한 맹세는 무엇인가?

완곡한 맹세는 죄악 된 세상의 불경한 어법을 전적으로 모방하기를 주저하는 자들이 말로 하는 모독적인 맹세이다. 완곡한 맹세의 사용은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죄이다. 그들은 신성모독적인 용어를 그대로 되풀이하여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을 범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함으로 스스로 양심을 속인다. 완곡한 맹세의 흔한 표현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God) 대신 거쉬(Gosh), ‘damn’ 대신 ‘darn’, ‘hell’ 대신 ‘heck’, ‘Jesus’ 대신 ‘Gee’, ‘Christ’ 대신 ‘Crises’, ‘devil’ 대신 ‘dickens’, 라틴어로 하나님을 의미하는 ‘Deus’ 대신 ‘deuce’가 그것이다. 제3계명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의 명령에도 모든 완곡한 맹세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4-37) 



(4) 서원은 어떤 경우에 죄가 되는가?

서원은 그 서원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에 금지된 것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명령 된 것을 지키는 의무를 방해하는 것이거나 행할 능력이 없는 것이거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능력이 아니라면 죄가 된다. 서원은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다른 피조물이나 거짓 우상 신을 섬기는 것이면 죄가 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2장7절 참조)



(5) 죄악 된 서원의 성경적 예를 들어보라.

첫째, 입다의 서원(삿11:30-31). 둘째, 바울을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유대인의 성원이다(행23:12-14).



(6) 추첨은 어떤 경우에 죄가 되는가?

“추첨은 다른 방법으로 결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사건을 제비뽑거나 주사위를 던져서 하나님의 섭리에 호소하여 결정하고자 하는 상호간의 합의이다”(Buck 신학사전). 그러나 추첨의 사용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죄가 된다. 

① 그것이 아주 사소한 문제를 위해 사용될 때이다. 

② 다른 방법을 통해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일 경우이다.

③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믿음이 없이 가볍고 경박한 영으로 할 경우이다. 



(7) 합법적인 맹세와 서원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

어려움이나 개인적인 손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양심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큰 죄이다. 



(8) 비합법적인 맹세와 서원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

만일 맹세와 서원이 비합법적인 것일 때, 즉 하나님의 도덕법과 배치될 때 그것은 양심을 속박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계명은 당신의 계명을 위반하는 일을 속박하지 않는다. 사람이 비합법적인 맹세나 서원에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을 즉시 거절하는 것이 그의 권리이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의무가 된다. 비합법적인 서원을 거절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아주 잘 알려진 사람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이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도사로서 영구적인 독신과 금욕주의에 대한 서원을 포함하여 그가 취한 서원의 비합법적인 특성을 깨닫고 즉각적으로 이러한 비합법적인 ‘의무들’을 거부했다. 



(9) 비합법적인 맹세를 깨뜨리는 일에 실패한 성경인물은 누구인가?

세례 요한을 목 베라고 지시한 헤롯 대왕이다(막6:14-29). 헤롯의 맹세는 비합법적인 것이었다. 그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나라의 절반을 주는 것과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약속할 권리가 없었다. 자신의 왕국에서 그의 권위는 거룩하게 위임된 것이다. 따라서 분별없는 변덕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과 정의에 의해 청지기정신이 발휘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게도 이러한 사악한 맹세를 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죄와 맹세의 위반을 회개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체면의 손상’을 염려해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10)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한 불평하고 시비를 거는 것은 왜 그릇된 일인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불평하고 시비를 거는 것은 언제나 그릇된 것이다. 

①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주권을 반대하는 반역의 영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평하는 자는 그가 하나님의 작정과 행위를 판단할 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 자리에 않아 있다는 것을 전재하는 것이다.

②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대한 믿음의 결핍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고난과 어려움과 궁핍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해 주실 것을 인내하며 기다리려 하지 않는다.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선함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그의 백성들을 즉시 구원해주셔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인 구원의 요구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시간에 당신의 방법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을 믿고 기꺼이 인내하려는 믿음의 태도와는 전적으로 배치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11)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호기심으로 파고들며, 잘못 적용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호기심으로 파고드는 것은 경외하는 태도 대신 호기심이 동기가 되어 하나님의 신비와 비밀을 수색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비밀을 호기심으로 꼬치꼬치 캐는 사람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비밀과 본질을 인장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완전히 섭렵하므로 자신의 죄악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기를 원하는 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신비와 속성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죄악이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잘못 적용하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그릇된 추측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사악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면 나는 영생을 받을 것을 확신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필요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필요도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섭리를 잘못 적용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나는 칠 일 동안 일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유케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킬 것을 기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잘못 적용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경우, 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한다면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잘못 적용하는 죄를 범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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