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믿는 자들이여, 이 얼마나 확신에 찬 구절입니까! 내가 가는 길을 - 이 눈물과 시련의 길, 제아무리 휘어지고, 안 보이고, 뒤얽혔어도 이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는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 풀무불이 "평소보다 칠 배나" (단 3:19) 뜨거워도, 그분께서 여전히 내 길 밝히심을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마라의 쓰디쓴 물에 닿든 엘림의 반갑고 시원한 샘물에 이르든(출 15:23, 27), 내 발걸음 아시고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안내자가 계십니다.
애굽인들은 그 길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는 그 길을 알려 주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습니다. 화로는 뜨겁겠지만, 나는 그 화로에 불을 붙이시는 손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불이 태우는 불이 아니라 연단의 불임을 또한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단의 과정이 끝나면 한순간의 오차도 없이 "정금같이" (욥 23:10)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보다 멀리 계시는 것 같은 그 순간 어느 때보다 내게 가까이 계십니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시 142:3). 한낮의 햇빛보다 밝게 빛나는 분, 우리가 눈을 떠 그날의 첫 빛을 보는 순간 우리를 만나 주시고 종일토록 무던히도 마음 쓰시며 우리를 지켜보시는, 우리가 "가는 길” 마저 잘 아시는 분, 우리 주님 말고 또 다른 이가 있다는 얘기 들어봤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불행을 만나면 “신의 뜻" 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전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우주를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명이 없는 추상적인 존재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의 뜻”이라는 그 말을 운명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우리의 행동하시는 하나님, 강하고 친밀하신 여호와를 격하하는 말입니다.
욥이 세상의 모든 소망을 잃고 극심한 고난중에 있을 때 보았던 것을 우리 또한 볼 수 있다면, 비록 많은 시련을 만나더라도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욥이 본 것은 바로 하나님의 손, 그의 하인과 가축을 쳐 죽인 스바 사람들의 칼 뒤에 있는 손, 모든 것을 멸절한 번개 뒤에 있는 손, 사막의 폭풍으로 그의 자녀들을 휩쓸어간 손, 그의 결딴난 집의 괴괴한 침묵 속에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본 욥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 1:21). 하지만 그의 믿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때 사막의 유력자였던 그가 “재 가운데 앉아서"도(욥 2:8) 여전히 이처럼 말합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욥 13:15), 절정의 믿음입니다.
April 22
God Knows
He knoweth the way that I take — Job 23:10
Believer! What a glorious assurance! This way of thine—this, it may be, a crooked, mysterious, tangled way—this way of trial and tears. “He knoweth it.” The furnace seven times heated—He lighted it. There is an Almighty Guide knowing and directing our footsteps, whether it be to the bitter Marah pool, or to the joy and refreshment of Elim.
That way, dark to the Egyptians, has its pillar of cloud and fire for His own Israel. The furnace is hot; but not only can we trust the hand that kindles it, but we have the assurance that the fires are lighted not to consume, but to refine; and that when the refining process is completed (no sooner—no later) He brings His people forth as gold.
When they think Him least near, He is often nearest. “When my spirit was overwhelmed, then thou knewest my path.”
Do we know of ONE brighter than the brightest radiance of the visible sun, visiting our chamber with the first waking beam of the morning; an eye of infinite tenderness and compassion following us throughout the day, knowing the way that we take?
The world, in its cold vocabulary in the hour of adversity, speaks of “Providence”—“the will of Providence”—“the strokes of Providence.” PROVIDENCE! what is that?
Why dethrone a living, directing God from the sovereignty of His own earth? Why substitute an inanimate, death-like abstraction, in place of an acting, controlling, personal Jehovah?
How it would take the sting from many a goading trial, to see what Job saw (in his hour of aggravated woe, when every earthly hope lay prostrate at his feet)—no hand but the Divine. He saw that hand behind the gleaming swords of the Sabeans—he saw it behind the lightning flash—he saw it giving wings to the careening tempest—he saw it in the awful silence of his rifled home.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th taken away; blessed be the name of the Lord!”
Thus seeing God in everything, his faith reached its climax when this once powerful prince of the desert, seated on his bed of ashes, could say, “Though he slay me, yet will I trust him.” —Macdu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