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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2일 수요 새벽 경건회 [찬송: 선하신 목자/주님께 경배드리세, 설교: 히12장14-17절, 사우디아라비아/모잠비크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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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pherd of my soul
I give you full control
선하신 목자
날 사랑하는 분
Wherever you may lead
I will follow
주 인도하는 곳
따라가리
I have made the choice
To listen to your voice
Wherever you may lead
I will go
주의 말씀을
나 듣기 원하네
주 인도하는 곳 가려네
Be it a quite pasture
Or by a gentle steam
The shepherd of my soul
is by my side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내 선하신 목자 날 인도해
Should I face a mighty mountain
Or a valley dark and deep
The shepherd of my soul will be my guide
험한 산과 골짜기로
내가 다닐지라도
내 선하신 목자 날 인도해


주님께 경배드리세 주님 앞에 나와 모두 무릎 꿇고
주님께 경배드리세 주님 앞에 나와 모두 무릎 꿇고
그는 나의 하나님 우린 그의 기르시는 백성
그의 손의 양이라 그의 손의 양이라
Come let us worship and bow down,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God and Maker.
For he is our God,
And we are the people of his pasture,
And the sheep of his hand,
Just the sheep of his hand.


히12:14-17

[새번역]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6. 또 음행하는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7. 여러분이 알다시피, 에서는 그 뒤에 축복을 상속받기를 원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구하였건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NIV]
14. Make every effort to live in peace with all men and to be holy; without holiness no one will see the Lord.
15. See to it that no one misses the grace of God and that no bitter root grows up to cause trouble and defile many.
16. See that no one is sexually immoral, or is godless like Esau, who for a single meal sold his inheritance rights as the oldest son.
17. Afterward, as you know, when he wanted to inherit this blessing, he was rejected. He could bring about no change of mind, though he sought the blessing with tears.



7월 12일 (수) / 사우디 아라비아 - 사우디아라비아의 기독교인들은 만나서 함께 예배 드리는 방법들이 흔히 제한을 당합니다. 신자들이 성령 안에서 진정한 교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모잠비크 - 올해 긴급식량구호를 받는 기독교 난민 1만 6천 명을 위해

 그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난은 그들을 더 높은 거룩함의 단계로 이끄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고난이 하나님의 뜻인 한, 그의 자녀들을 새롭게 힘을 내고 참으면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것"을 그들의 과제로 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을 당할 때 인내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향하여서도 결코 평온하고 평화롭게 대할 수 없으며, 또 하나님께 대하여 경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과 인내는 근면하게 기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르게 해 주는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첫째, 고난을 당할 때라도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해야"하며 심지어는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과도 화평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이것은 어려운 과제이며 고차적인 교훈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것인 것이다. 고난을 당할 때 영혼이 그 고난을 감수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유지하여야 한다. 둘째, 평화와 거룩함은 상관 관계에 있는 것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뜻과 우정을 보여 주며 신중하고 사려 깊은 인내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거룩함이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는 핑계로 거룩한 길을 떠나고자 해서는 안 된다. 다만 거룩한 길 가운데서 평화로워야 한다. 셋째,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구주 하나님을 뵈옵는 것은 오직 거룩한 자에게만 상급으로 주어질 것이다. 비록 평온한 기질이 하늘나라를 예비시키는데 우리에게 크게 기여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거룩함이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6. 그리스도를 인하여 받는 고난과 고통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징계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선용하지 않는다면 그 고난은 우리를 배교하게 하는 함정과 유혹의 덫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깊게 이러한 가운데 빠지지 않게 위해 조심해야 한다(15,16절).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15절)"라고 하였다.

(1) 여기서 바울은 배교에 대하여 심각한 경고를 하고 배교의 무서운 결과를 예로 들어 경고를 뒷받침하였다.

[1] 바울은 배교에 대하여 심각한 경고를 하였다(15절). 여기서 다음을 유의하자.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며, 신앙이 파산된 상태를 이르는 것이며, 그리고 이같이 되는 것은 훌륭한 기반과 적절한 배려와 근면함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함은 은혜가 주어지며 또한 신앙은 고백하나 참된 은혜가 영혼을 지배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둘째, 배교의 결과,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게 되지 못할 때 쓴 뿌리가 싹틀 것이다. 즉 부패된 근성이 선을 이기고 솟아 나올 것이다. 그리고 "쓴 뿌리"는 배교자들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까지 쓴 열매를 맺게 한다. 쓴 뿌리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악한 생활 원칙에 의해 생활하게 하며 그것은 사람으로 배교하게 하며 또 사람이 배교하게 되면 이러한 악한 요소들은 더욱 강력해지고 확산된다. 그리하여 저주스러운 과오 즉 교회의 교리와 예배를 부패시키며 악한 행실이 솟아나게 한다. 배교자는 점점 더 악하게 되어서, 가장 사악한 악에 빠지게 되며 그리하여 결국 무신론에 빠지거나 파멸로 끝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배교는 다른 사람들 즉 이런 배교자들이 속한 교회까지 나쁜 열매를 맺게 한다. 그들의 악한 생활 원리와 생활에 의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교회의 평안히 깨어지며, 사람들의 마음속의 평안히 깨지고, "많은 자들이 더러움을 입게 되며" 즉 이러한 나쁜 생활 원리에 감염되어 더러운 행실을 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 순결함과 화평함에 있어서 동시에 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배교자들 자신이 결국은 가장 고난을 많이 받는 자들이 될 것이다.

[2] 바울은 두려운 예를 들어 자신의 권면을 보충하고 있다. 즉 그는 에서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에서는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태어났고 장자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예언자와 제사장과 왕이 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성한 특권을 멸시하고서 단지 한 그릇 팥죽을 받고 그것을 팔아 버렸던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첫째, 에서의 죄. 에서는 출생의 특권과 그 출생에 포함된 모든 것을 불경스럽게 멸시하여 팔아 버렸다. 배교자들도 마찬가지 부류의 인물들인 것이다. 그들은 박해를 피하고 감각적인 안락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비록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서 축복과 유산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배교함으로 모든 권리를 포기해 버린다. 둘째, 에서의 받은 형벌. 그것은 그의 죄에 대하여 마땅한 것이었다. 에서는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을 깨닫기는 했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에서는 뒤늦게 축복을 물려받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고 하였다. 에서에게 내려진 벌은 두 가지이다.
a. 에서는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 스스로 정죄함을 받았다. 에서는 자신이 경시하던 그 축복이 많은 근심과 많은 눈물을 흘리고서도 찾아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b. 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다. 에서는 하나님에게서나 그의 육친의 아버지에게서나 "거절을 당하였다." 축복을 에서가 한 그릇의 죽에 그 축복을 팔아 버린 그의 동생에게로 내려졌던 것이다. 에서는 마음속의 커다란 악함 때문에 축복을 싼값으로 팔아 버렸고,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판단으로써 그가 축복을 판 사실을 기정 사실로 비준하고 확인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으로 하여금 그 축복을 돌이키지 못하게 하셨다.



(2) 우리는 여기서 다음을 배우도록 하자.

[1] 그리스도를 배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하늘의 유산보다 육체의 만족을 더 좋아한 결과라는 점이다.

[2] 죄인들은 신성한 축복과 유산에 대해서 지금처럼 언제나 멸시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잃어버린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떤 고통의 배려나 눈물도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때가 이를 것이다.

[3] 은혜의 날이 끝났을 때(은혜의 날은 지금 우리 생활 속에서 끝나 버릴 수도 있다) 그들은 결코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죄를 회개할 수 없게 될 것이고 하나님 또한 자신이 그들의 죄에 대하여 내린 형벌 선고를 변역(變易)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결코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거룩한 신앙을 포기함으로 그들의 자격과 하나님의 축복과 유산에 대한 소망을 버리거나 자신을 하나님의 변개할 수 없는 분노와 저주 앞에 들어내 놓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악한 자들이 이유 없이 우리를 괴롭힐 때 그것은 박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난을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께서 그들을 자신에게 연합시키고 자신과 교우하게 하시기 위하여 내리시는 판단과 견책의 막대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사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의 본래적 이유를 제시하여 논증함으로 그의 논리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20230712수요새벽경건회[찬송선하신목자,주님께경배드리세,설교-히12장14-17,사우디아라비아,모잠비크기도8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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