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1:13-16
[새번역]
13.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14.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5.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NASB]
13. All these died in faith, without receiving the promises, but having seen them and having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nd having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exiles on the earth.
14. For those who say such things make it clear that they are seeking a country of their own.
15. And indeed if they had been thinking of that country from which they went out, they would have had opportunity to return.
16. But as it is, they desire a better country, that is, a heavenly one T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s prepared a city for them.
바울은 다른 족장들 즉 이삭과 야곱 및 이 복된 가족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도 언급되었다(13절).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그들은 현재 생활의 불안정은 그들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약속된 것들을 아직 받지 못하였다. 즉 그들은 약속된 내용의 것들을 받지 못하였고, 아직 가나안을 소유하지도 못하였으며, 많은 자녀들도 아직 가지지 못하였으며,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아직 만나지도 못하였다. 다음을 유의하자.
(1) 많은 사람들이 약속은 얻었어도 그들에게 약속된 것을 즉시로는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 지상에 사는 성도들의 현재 상태의 불완전은 그들의 행복이 현세의 쾌락과 많은 제물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장래 저 세상에서 실현되는 것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음 시대에 삶은 족장시대보다 좀더 완전하다. 왜냐하면 그때의 언약의 여러 가지가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의 삶은 가장 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약속이 그곳에서 성취되고 완성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2. 불안정한 세상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계속된 저희 믿음의 행위. 비록 그들이 아직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지만 다음의 것들을 행하였다.
(1) 그들은 약속을 멀리서 보았다. 믿음은 맑고 강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자는 아직 멀리 있는 약속된 자비를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날이 아직 멀리 있을 때 그날을 보고 기뻐하였다(요 8:56).
(2) 그들은 그 언약들이 참되며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었다. 믿음은 하나님은 참되시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안정되게 해 준다.
(3) 그들은 그 언약된 것을 부분적으로 누렸다. 그들의 믿음은 승낙의 믿음이었다. 믿음은 긴 팔을 가지고 있으므로 멀리 떨어진 축복을 끌어안아서 현재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누림으로 기쁨을 맛본다. 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앞당기어서 맛보았다.
(4) 그들은 자신들이 "땅에서는 타향사람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다"(13절).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그들의 처지. 그들의 처지는 "타향 사람과 나그네"의 처지였다. 그들은 하늘나라가 고향인 나그네였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집을 향하여 여행하는 순례자들이었다. 그들의 여정이 때때로 초라하고 더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집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2] 자기들이 처한 처지에 대한 그들의 태도. 그들의 생활을 부끄러움 없이 말하고 삶의 태도 역시 떳떳하였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짐이 될 만한 것은 가급적 떨어 버리려고 노력하였으며, 마음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기 길을 가는데 전념하며, 동료 여행자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고자 하였다. 그들은 어려움을 예상하고 그것들을 견뎠으며 또 집에 다다를 것을 소망하였다.
(5) 그들은 다른 나라 즉 그들의 본향인 하늘나라를 목적 삼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하늘나라를 그들의 고향이라고 한 이유는 그곳이 그들의 영적인 출생지요 그곳이 그들의 유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로 이 나라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삶이 지향하는 바는 이 나라에 있었고 그들의 소망도 이 나라에 있었다. 또한 그들의 대화의 주제는 이 나라에 관해서였다. 그들은 그 나라에 합당한 자격을 얻기 위해 또한 그 나라에 알맞는 성품을 지니며 그 나라에게 즐거움을 누리며 거기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위하여 부지런히 노력하였다.
(6) 그들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함으로써 그들의 신실성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1] 그들은 자기들이 떠나온 나라를 생각하지 않았음을 고백하였다(15절). 그들은 떠나온 나라의 풍요함과 안락함을 동경하지도 않았으며, 그곳을 떠난 것을 후회하거나 언짢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결코 그리로 되돌아가려고 바라지 않았다. 구원의 능력이 깃든 부르심을 받아 죄된 처지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함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더 좋은 것들을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이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런 기회를 만들려면 만들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정도의 시간을 충분히 있었다. 또한 돌아갈 수 있는 힘도 있었다. 또한 그들은 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도 그들을 기꺼이 보내 줄 것이었다. 그리고 옛날 친지들은 그들을 다시 기쁘게 맞아 주었을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경비도 충분히 있었다. 또한 사람을 타락케 하는 악한 상담자인 혈육은 그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라고 때때로 눈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낙망과 또 하나님을 거스르게 하려는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과 그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따라갔다. 우리도 모든 일을 그렇게 행하여야 한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치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끝날까지 하나님을 꾸준히 따름으로써 우리의 믿음과 고백의 참됨을 보여야만 한다. 그들의 신실성은 떠나온 나라로 돌아가지 않는 데서 나타나야 함은 물론이고 더 좋은 나라 즉 하늘에 있는 나라를 소망함으로써 나타나야 한다. 다음을 살펴 보자. 첫째, 하늘나라는 지상에 있는 어떤 나라보다도 더 좋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더 좋은 곳에 위치하여 있으며 또 아름다운 물건이 무엇이든지 있으며 악한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 안정된 곳이었다. 고용주나 기쁨 사회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지상에 있는 가장 좋은 것보다 탁월하다. 둘째, 참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나라를 소망한다. 참된 믿음은 신실하고 열렬한 소망을 가져다 준다. 믿음이 강할수록 그러한 소망 또한 더욱 강렬하여진다.
(7) 그들은 그러한 약속들을 믿으면서 죽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서 모든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을 충분히 믿는 가운데 죽었다(13절). 그들은 죽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리고 죽을 때 그들은 믿음으로 속죄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였다. 그들은 모든 사탄의 격렬한 창을 꺾어 버렸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였으며, 죽음의 가시를 무력케 하였고,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안락과 십자가를 즐거이 하직하였다. 그들의 믿음의 행위는 이러하였던 것이다. 이제 다음의 것을 살펴 보자.
3. 그들의 믿음에 대한 은혜롭고 큰 보상.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절)"고 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하나님은 모든 참된 믿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다. 믿음은 그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충만함에 대한 관심을 준다.
(2)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그렇게 부르신다. 그러므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그는 말씀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도록 내버려 두셨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양자의 영을 주사 그들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본성이 천박함과 죄로 인해 악해진 성품과 그들의 외적인 조건 상태의 빈곤에도 불고하고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우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겸손이며, 또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이와 같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떤 멸시를 당하든지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께 비난과 부끄러움을 돌리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또 그들은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하므로 그로 하여금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시게 해서도 안 된다. 다만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행하고 그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하여야 한다.
(4)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그 백성들을 위하여 한 도성 즉 그의 백성에게 울리는 행복의 장소를 예비하셨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낼 만한 적당한 장소가 도무지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지 못하거나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자기가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과 그런 관계를 맺게 하셨다면 또한 그 관계에 부끄럽지 않는 것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취하셨다면 그 이름에 합당한 만큼 충분한 응답을 주시고 이에 합당한 행동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명칭에 부끄럽지 않을 나라를 그들을 위해 하늘에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한 백성으로 자기의 양자들로 삼으시고 그러나 그들에게 적절한 대우는 해 주시지 않았노라는 비난을 받으실 일은 결코 하시지 않았음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숙고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도성을 향한 사랑을 불태우고 소망을 넓히며, 부지런한 노력으로 열심을 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