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 목자 우리 주
사랑과 진리로 이끄시니
승리한 우리 주 그 이름 기리며
성도들 모여서 찬양하라
2. 거룩한 우리 주
능력의 참 말씀 평화의 왕
자기를 낮추사 우리를 죄에서
구하여 주시고 살리신다
3. 우리의 인도자
목자가 되시니 참 구주라
예수는 참 구주 그 말씀 가지고
우리를 이끄사 힘 주신다
4. 이제와 영원히
즐거운 노래로 주를 찬양
주님의 온 교회 거룩한 우리들
우리 왕 예수를 찬양하라
아멘
1. Shepherd of tender youth,
Guiding in love and truth Through devious ways,
Christ, our triumphant King, We come Thy Name to sing
Hither thy children bring Tributes of praise.
2. Thou art our holy Lord,
The all subduing Word, Healer of strife
Thou didst Thyself abase, That from sin's deep disgrace
Thou mightest save our race, And give us life.
3. Ever be Thou our Guide,
Our Shepherd and our Pride, Our Staff and Song
Jesus, Thou Christ of God, By Thy eternal word,
Lead us where Thou has trod, Make our faith strong.
4. So now and till we die
Sound we Thy praises high, And joyful sing
Let all the holy throng Who to Thy Church belong,
Unite to swell to song To Christ our King!
Amen.
마태복음5:4
[현대인의성경]
4. 슬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NASB]
4.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11월 22일 (수) / 콜롬비아 (2023 WWL 22위) 교회는 범죄 집단들, 토착민 지도자들, 그리고 이념적 압박 단체들의 위협에 대한 빈번한 표적입니다. 기독교 지도자들과 가족들은 특히 토착민 공동체에서 괴롭힘의 표적이 되고, 모든 기독교 활동들은 금지됩니다. 범죄 집단들에 의해 흡수된 지역에서 기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흔히 폭력, 감시, 그리고 이동 제한에 있어서 가장 빈번한 희생자입니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옹호 및 교회들이 공공 부문에서 개입을 추구하는 방법과 관련된 기독교 설교에 대한 사회의 철저한 검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아제르바이잔: 영적 공격을 받는 성도들이 계속 신실할 수 있도록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4절). 이것은 또 다른 이상한 축복으로서 앞의 축복에 적절히 뒤따르고 있다. 가난한 자는 애통하는 데 익숙해 있으며, 가난한 자는 은혜스럽게 애통한다. 우리는 자칫하면 "즐거운 자"가 복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위대한 애통자이셨던 그리스도는 "애통하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축복과는 적대가 되는 애통, 즉 죄악스러운 애통도 있다. 그것은 "세상의 슬픔"이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사건에 대한 절망적인 울적함과 세속적인 사건에 대한 슬픈 고뇌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축복에 도움이 되는 이른바 자연스런 애통이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역사 한다. 그리고 그 축복은 우리의 애통의 원인인 그 고난을 성화 시켜 준다. 그러나 또한 은혜스러운 애통이 있는데, 이것은 축복을 받기에 적합한 것으로서 습성적인 진지함이며, 환락을 억제하는 마음, 실제적인 슬픔이다.
1. 우리 자신의 죄를 위한 참회의 애통. 이것은 "경건한 슬픔," 하나님께 속한 근심이며,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죄에 대해 슬퍼하는 것이다(슥 12:10). 그들은 하나님의 애통하는 자들로서 회개의 생활을 하며 그들의 성품의 타락성과 실제적인 많은 범죄들과 자신들에게서 하나님이 물러서 버린 것에 대하여 애통한다. 또한 타인의 죄에 대해 애통하며, "그들의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운다"(겔 9:4).
2. 타인의 고통을 위해 동정하는 애통.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자들의 애통은 "경건한 대회를 인하여," "시온의 파괴를 인하여" 슬퍼하는 것이다(습 3:18; 시 137:1). 특히 그들은 "예루살렘"을 보면서 우신 그리스도와 같이 멸망하는 영혼들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그들에 대해 "애곡하는" 것이다.
이제 이 은혜스러운 애통자들은,
(1) "복이 있다." 헛되고 죄스러운 "웃음"을 짖지만 그 마음은 슬플 수 있는 것처럼 은혜스러운 애통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진정한 즐거움, 은밀한 만족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복이 있는"것은 "슬픔의 사람"이었으며 종종 우셨다는 것 이외에는 웃으셨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그리스도와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헛된 환락을 수반하는 많은 유혹들에 대항할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있으며, 도장이 찍어진 용서와 정해진 평화의 위로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2) "저희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비록 그들이 즉시 위로를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위로를 위하여 많은 준비가 되어 있다. 영광이 그들을 위해 심기워진다. 확실히 그들은 나사로(눅 16:25)와 같이 하늘에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하늘의 행복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위로 받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기쁨"이며, 완전한 즐거움이며 영원한 만족이다." 그것은 이 "경건한 슬픔"에 의해 그들을 위해 준비된 자들에게 갑절이나 즐거운 것이 될 것이다. 천국은 참으로 애통하는 자들이 가는 천국이 될 것이다. 그것은 즐거움의 수확, 즉 눈물로 씨를 뿌린 것에 대한 댓가가 될 것이다(시 126:5, 6). 즐거움의 산은 우리들의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 그 대로가 놓여있다(사 66:1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