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마태복음 4:18-22 설교/2023년 11월 14일 화요/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At once, immediately

반응형

마태복음4:18-22

[새번역]
18.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21.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NIV]
18. As Jesus was walking beside the Sea of Galilee, he saw two brothers, Simon called Peter and his brother Andrew. They were casting a net into the lake, for they were fishermen.
19.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20.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21. Going on from there, he saw two other brothers, James son of Zebedee and his brother John. They were in a boat with their father Zebedee, preparing their nets. Jesus called them,
22. and immediately they left the boat and their father and followed him.

처음 제자들 (마태복음 4:18-22)

그리스도께서 그가 전파하실 때에 먼저 "제자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하였는데, 이 제자들은 지금은 그의 가르침을 "듣는 자"에 불과하지만 이후에는 "전파자"가 될 것이며 또한 지금은 그의 기적들을 본 증인에 불과하지만 이후에는 그것들에 관해 직접으로 증거 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이곳에는 그리스도께서 그와의 사귐을 위해 친히 부르셨던 첫 번째 제자들에 대한 기사가 있다.

1. 이것은 그리스도에게로 부르심을 받은 "효과적인 소명"의한 실례이다. 그는 자신이 행한 모든 설교에서 모든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부르셨지만, 여기에서는 특별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자들만을 부르셨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을 보고 찬미하자. 그리고 그의 말씀을 그의 능력의 막대기로 인정하고, 복음 소명을 더욱 유효하게 하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 있는 영향력, 즉 두드러진 영향력을 얻기 위해 그를 모셔들이자. 모든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사람들만이 불러내어져 구원함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이들에게만 자신을 드러내셨으며, 모든 세계에 드러내신 것은 아니다.

2. 이것은 목회 사역에 대한 계율과 명령의 한 실례이다. 선생인 그리스도께서 큰 학교를 세우셨을 때 그가 착수한 첫 번째 사업중의 하나는 교장 밑에서 가르치는 일을 전담할 보조교사를 임명하는 일이었다. 이제 그는 사람들에게 은사를 베풀고 토기 그릇에 보화를 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가 일찍이 자기 교회를 돌 본 하나의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Ⅰ. 그들이 부르심을 받았던 "장소" ─ "갈릴리 바다"로서, 이곳을 예수님이 걷고 계셨는데 가버나움은 이 바다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 디베랴 바다에 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든 일곱 바다 가운데서 이 게네사렛 바다만을 선택하셨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이곳에 나타나시어 이적 기사를 행하심으로써 영광스럽게 된 사실과 잘 들어맞는다. 여기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광야를 거닐 때 이삭과 같이 바다의 둑길을 따라 묵상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는 이곳으로 제자들을 부르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는 헤롯의 궁전(권세가나 귀족이 부르심을 받은 예는 거의 없음)이나 예루살렘(거기에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있었음)으로 가시지 않고 갈릴리 바다로 오셨다.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보시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전혀 다르다. 베드로나 안드레를 유효하게 부르셨던 똑같은 능력이 안다스나 가야바에게는 미칠 수 없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대화나 배려에 있어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셨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의 가난한 자"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갈릴리는 유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북반부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그 주민들은 거의가 다 미개하고 상스러웠으며, 또한 그들의 언어 역시 순사투리였고 시비하거나 싸울 때는 매우 거칠게 들렸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신분과 지방을 알 수 있는 정도였다." 갈릴리 바다에서 선택함을 받은 자들은 그들보다는 좀더 세련된 갈릴리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특권이나 장점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장차 그의 왕국에서 우두머리 장관이 될 사람들을 부르시기 위하여 이곳으로 오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이다.

Ⅱ. "그들의 신분". 우리는 이곳에서 두 쌍의 형제들에 대한 기사를 읽어볼 수 있다. 즉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다. 베드로와 요한(아마 야고보와 요한도)은 이미 그리스도로 알고 있었으나(요 1:40, 41), 그때까지 친밀하고 지속적으로 그를 따르도록 소명 받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는 가난한 심령들과 더불어 점차적으로 교제를 맺으신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회개의 연단을 거친 자들은 신앙의 즐거움에 영접될 것이다. 이것들에 대해 다음의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그들은 "형제들"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골육으로 친척 된 자"(롬 9:3 에서 바울 사도가 말한대로)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축복이라는 사실이다. "한 가족"이 "하나님의 식구"가 되었을 때 그것은 가문의 영예요 위로이다.

2. 그들은 "어부들"이었다.

(1) 어부였으므로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재산이나, 또는 상업상 적지 않은 저장품을 가지고 있었다면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이런 것은 한낮 취미나 오락으로 즐겼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를 멸시치 않으시며, 따라서 우리도 그렇지 않음을 유의하라. 즉 가난한 자에게 복음은 전파되며, 영예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때로 가장 부족한 자에게 더욱 풍성한 영예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2) 그들은 "무식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애굽의 모든 지식을 통달하였던 모세와 같이 책과 문학으로 양육 받지 못하였다. 종종 주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자들을 택하여 풍성한 은혜의 선물을 안겨 주려고 하신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지식과 언변에 대한 특별한 은사가 지금 당장에 기대되지는 않지만 필수적인 능력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얻어져야만 한다. 또한 이것들의 충분한 능력과 분량이 없이는 그 누구도 목회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3) 그들은 노동으로 잔뼈가 굵어진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성실한 직업에 있어서 근면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며 거룩한 생활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양을 지킬 때, 다윗은 양 무리를 칠 때에 두드러진 사역에로 부르심을 받았다. 게으른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보다는 사탄의 시험에로 더 개방되어 있다.

(4) 그들은 "곤경"과 위험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어부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보다 더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다. 어부는 종종 물에 젖고 추위에 떨어야만 한다. 그들은 주시하고 기다리고 수고해야만 하며, 때로 물의 위험을 당해야만 할 때도 있다. 고난을 참고 위험을 극복할 줄 아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갖거나 그의 제자가 되기에 매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어려운 고난을 참고 견디어야만 한다.
Ⅲ. "그들의 직업." 그 때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들의 그물을 사용하여 고기를 잡고 있었으나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그물을 "깁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근면성과 절약성을 보여 주는 한 실례이다. 그들은 새로운 그물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에게로 가지 않았으며,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낡은 그물을 깁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힘껏 해보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아버지인 세베대"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일을 돕고 거들어 주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자녀들이 그들의 양친을 돌보고 의무를 다하는 일은 즐겁고도 고무적인 일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그들은 모두가 한 가지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게으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이 보여질 때는 매우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라고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가 내 직업 속에 있는가?"를 물어야할 것이다.

2. 그들은 서로 다르게 "일하고 있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고기를 잡고 있었고, 두 사람은 "그물을 깁고" 있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목사는 가르치든지 연구하든지 항상 일해야만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언제나 할 수만 있다면 그들 스스로가 일할 것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물을 깁는 일은 한창 때에 고기를 잡는 일에 못지 않게 꼭 필요한 일이다."
Ⅳ. "그들의 소명"(19절) "나를 다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들은 이전에 평범한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따랐으며(요 1:37), 동시에 그리스도를 따르면서도 그들의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다 친밀하고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소명된 자라 할지라도 특히 목회의 사역을 위해 택정함을 받았을 때는 더욱 더 가까이 그를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1.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무엇을 의도하셨는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것은 그들이 이전에 가졌던 직업을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새로이 부과된 영광스러운 지위에 대해 자만해서는 안 될 것이니, 이는 그들이 여전히 일개 어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새로이 할당된 임무에 대해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니, 이는 그들이 고기 잡는 것을 계속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어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일에서 끄집어낸 이러한 암시나 표현으로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을 말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다윗은 양을 먹이는 데서부터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먹이도록 소명을 받았다. 그는 왕이면서 목자였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 목사는 "고기를 낚는 어부"로서, 사람들을 다른 환경으로 옮김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오히려 구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노나 부귀, 명예나 진급, 또는 그 자신을 얻기 위해서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고기를 낚아야만 한다.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며'(히 13:17), 또한 "그들이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너희인 것이다"(고후 12:14, 16).

(2) 그들을 어부로 만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며, 이 일을 하도록 불러내며, 권한을 주고 성공케 하신다. 또한 그들에게 영혼을 위해 고기를 낚는 사명을 주며, 그들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소명을 받은 교역자들은 모름지기 자신들의 사역에 큰 보람과 위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2. 그들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곧 "나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제쳐놓고 부지런히 그리스도를 따르고 겸손히 그를 닮아가야 하며, 그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삼고 따라가야만 한다.

(1)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봉사를 위해 무엇보다도 우선 이에 합당한 자격을 구비한 자를 쓰신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 쓰임을 받으려는 자는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2) "그리스도를 전파"하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리스도를 "배우고," 또한 그에 대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그를 잘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자식에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인가?

(3) 그리스도와 교제를 가지려고 하는 자는 모름지기 그를 따르는 일에 부지런하고 계속적이어야만 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항상 출입하실 때 그와 함께 동행함으로써"(행 1:21) 그들의 사역이 준비되었다. 지식을 얻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지도를 받았으므로 그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매우 적합하였다.

(4) 사람을 낚으려는 자는 부지런하고 신실하게, 또한 온유하게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가 행하는 것을 본받아 그대로 행해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설교자들에 대한 초대의 모본이며, 설교자들은 "그와 더불어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어야만 한다.
Ⅴ. "이 소명에 대한 좋은 결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부르신 소명은 성공적이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 두고"(20절) 그를 쫓았으며, 야고보와 요한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22절) 그를 쫓았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를 올바로 따르려는 자는 그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독자는 모든 감정적인 것을 버리고 이것들에 냉담해야 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워해야"하며 (눅 14:26), 그들을 그리스도보다 덜 사랑해야 하며, 그들보다는 그리스도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목회의 사역에 헌신하려는 자는 특별히 전인(全人)을 요구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일들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

1. 주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이러한 예로 우리로 하여금 그의 은혜의 유효성을 믿도록 좋은 격려를 해 준다. 그의 말씀은 얼마나 강력하고 유효한가! "그가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서로 견주어 볼 만한 능력 있는 말씀이 있으니, 이는 "나사로야! 나오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즐거이 헌신하도록 만드는"(시 110:3) 능력이다.

2. 제자들의 유연성에 대한 이러한 예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좋은 본보기가 다녔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그에게 나오거나, 주인이신 그가 인도하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이 마땅히 지녀야 할 좋은 속성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현재 사역이나 가족과의 유대, 소명 받은 봉사의 어려움, 이 부르심에 합당치 못한 자신들에 대해 하 등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그들이 따르고 있는 분을 매우 잘 알았으므로 순종하여 나갔던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을 버려 두고" 그를 쫓았다. 그의 아버지(세베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알 도리가 없다. 그의 어머니 살로매는 그리스도를 항시 따르던 자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의 아버지 세베대도 믿는 신자였으나 그리스도는 특별히 젊은이를 불러 자기를 따르게 했음이 분명하다. 청년기는 배우는 시기요, 일하는 시기이다. 제사장들은 한창 나이 때에 직무를 수행하였다.

matthew41822preaching.MP3
18.00MB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