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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 9월 30일,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 별세, "죽기 전날까지도 설교와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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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조지 휫필드, 녹슬어 없어지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오늘은 위대한 설교자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가 별세한 날입니다. 1770년 9월 30일 주일 아침 7시, 55세의 설교자는 매사추세츠의 뉴베리포트(Newburyport)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녹슬기보다는 닳아 없어지기를 원했던 휫필드는 죽기 전날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휫필드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한밤중에 그를 찾아왔고, 위대한 설교자는 창문을 열고, 손에 든 촛불이 꺼질 때까지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습니다. 휫필드는 일곱 번째 뉴잉글랜드(미국) 방문 시에 숨을 거두었는데, 당시 그의 곁에는 가족도, 뒤를 이을 자녀도 없었습니다. 웨슬리 형제와 휫필드가 주역이 된 부흥운동이 영국을 프랑스 혁명과 같은 위기를 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많은 사가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실로 조지 윗필드는 거룩한 사람이었다……그는 새벽 4시부터 5시까지를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으로 보냈고……실로 기도는 그가 호흡하는 ‘천연의 공기’였다…………그는 감리교 운동의 칼빈주의적 분파(分派)의 수장 자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그 뒤로 ‘단순히 모든 사람의 종’으로 봉사했다. 또한 윗필드는 새로운 설교 방식으로 복음의 세계를 가르쳤다. 사역자들이 전반적으로 열심도 없이 변호조의 설교를 하던 시절에 그는 진취적인 열심과 불굴의 용기를 갖고 복음을 설파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영혼에 불을 놓았고, 많은 설교자들이 그에게서 본을 받아 똑같은 방식으로 설교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그의 설교 스타일은 개신교의 설교자들 압도적 다수에 의해 백여 년 동안 계속 실행되었다.[Arnold A. Dallimore, George Whitefield, 오현미 역, 『조지 윗필드』 (서울: 두란노, 1991), 277-78.]


휫필드는 죄인들이 구세주께 돌아오는 것을 보며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영국이 낳은 위대한 복음전도자였던 이 사람이 칼빈주의자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혁파는 뜨거운 심장으로 전도하는 것을 강조해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사악한 행위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의 계획을 강조하는 교리는 전도의 관심과 양립할 수 없다는 거짓말에 영원한 종식을 고합시다. 휫필드가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실천에 옮겼는지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이러한 인물을 주시기를, 나도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준비합시다.


루터는 “기도와 독서, 시험과 묵상이 목사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것들은 완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묵상은 몸에 있어 소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밤중에도 묵상했습니다. 이삭 역시 밤중에 들에 나가 ‘묵상하였다’, 혹은 다른 번역본에서는 ‘기도하였다’는 표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은 일종의 조용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하게 기도함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 뵈옵는 복된 영혼들이 되어 즉각 교훈을 받게 됩니다……그리고 묵상이 신앙생활에 얼마나 많은 활력을 불어넣는지 말할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묵상하는 동안 불이 붙었다”고 했습니다.[George Whitefield, Sermons on Important Subjects, 서창원 역, 『와서 최고의 신랑 그리스도를 보라』 (서울: 지평서원, 2008),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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