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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3년 10월 7일, 윌리엄 로드(William Laud) 출생, "감독교회의 신성한 사도적 권위에 대해 강하게 확신하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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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윌리엄 로드, 종교개혁의 원칙에서 가장 멀리 이탈되고 로마에 가장 접근된 자” 


오늘은 윌리엄 로드(William Laud)가 태어난 날입니다. 1573년 10월 7일, 로드는 잉글랜드의 버크셔 레딩(Reading, Berkshire)에서 출생했습니다. 옥스퍼드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에서 수학한 그는 1628년에 런던의 주교로, 1633년에는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로드는 국왕 찰스 1세의 로마교 옹호정책을 지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일에 운동과 게임하는 것을 법으로 권장했으며, 로마교의 예식과 유사한 것을 강요했는데, 이는 청교도들의 반감을 일으켰습니다. 그에 의해 소환된 청교도들은 코나 귀를 베이거나,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얼굴에 SS(선동 유포자 ‘Sower of Sedition’)라는 낙인이 찍히거나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라우드는……감독교회의 신성한 사도적 권위에 대해 강하게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교리적인 면에서 그는 강한 알미니안주의자였다. 반면 그와 그의 성직자 친구들은 절대정치를 극단적으로 시도하려는 찰스의 열렬한 선동자였다. 그가……교회에서 기도방식 통일법령이 축출되어진다면 연합은 오래 계속되어질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은 그의 지적인 도량의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특별히, ‘성스러움의 미덕’이라고 불렀던 것을 행하는 데 열심이었는데 그것은 예배에 있어서 감각적이고, 의식적인 것들을 증가시키고, 계절과 성자들의 축제일들을 그리고 사순절 기간에 생선만 먹는 일의 준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성스러움의 미덕은 특별히 성스러운 존재인 사제들이 거룩한 제복과 몸짓을 통하여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인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그 건물 속에 있는 기구와 그릇들과, 칼과 냅킨까지도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며, 그런 것들도 존경심을 가지고 만지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James Heron, A Short History of Puritanism, 박영호 역, 『청교도 역사』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5), 208-209.]


윌리엄 로드의 핍박 속에서 청교도들은 고국에 남아 저항하거나, 뉴잉글랜드로 건너가 ‘언덕 위의 도시’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시기에는 나올 수 없는 탁월한 작품들이 목숨을 내어걸고 복음을 전했던 청교도들에 의해 저술되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유익이라고 고백했던 시편기자가 떠오릅니다. 비록 신음하고 있으나 인내하며 주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유명한 토마스 맥콜리(Thomas Macaulay) 경(卿)은 청교도의 영성을 이해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윌리엄 로드를 정확하고 파악하고 그에 대한 글을 썼다. “성공회의 모든 고위 성직자들 중에서 로드는 종교개혁의 원칙에서 가장 멀리 이탈되고 로마에 가장 접근된 자이다…그는 성격이 조급하고 화를 잘 내며 자존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동정할 줄 모른다. 그는 미신적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거짓에 잘 이끌리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까다롭고 고약한 감정을 경건한 열망으로 착각한다. 그의 지시로 나라의 구석구석이 항상 조사를 받아야 한다……” 로드는 대주교로서 국교의 양식에 따르지 않는 자들을 체포하고 투옥시키는 권력 행사를 하였다. 그리고 심문을 하고 박해를 하기 위해서 스타 챔버(Star Chamber)라는 법정을 사용하였다.[Erroll Hulse, Who are the Puritans?, 이중수 역,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서울: 목회자료사, 2001),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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