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당신을 섬기는 일이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가 별세한 날입니다. 1747년 10월 9일 금요일, 브레이너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29세의 나이에 요절(夭折)한 선교사의 사인(死因)은 폐결핵이었습니다. 그는 사망하기 수년 전부터 우울증과 과로로 고생했으며, 핏덩어리를 토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동부 코네티컷(Connecticut)의 해담(Haddam)에서 태어난 브레이너드는 9살에 아버지를 잃고, 14살에 어머니와 사별했으며, 부당하게 예일대학에서 쫓겨났습니다. 이후 그는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지도자인 토머스 코크도 브레이너드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중국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은 일기에서 선교사인 바울과 브레이너드와 엘리엇을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했다……위대한 선교사 헨리 마틴은 다른 누구보다도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로부터 처음으로 영감을 받아서 새로이 헌신했다. 미국에서 에드워즈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목사 회상록을 출판한 결과, 미국 프로테스탄트 선교 운동의 시작 때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새뮤얼 밀즈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이 인상적인 사람들 말고도, 브레이너드의 생애를 소중히 여겨서 그를 열심히 배우려고 했던 로버트 맥체인이 있다……“데이비드 브레이너드……그대를 생각할 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 오늘밤, 어느 때보다 선교 활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든다.”[John Thornbury, David Brainerd, 김기찬 역,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선교사, 기도의 성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5), 132-33.]
짧은 생애와 사역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지금까지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경건의 본과 일기는 영혼을 일깨워 하나님을 향하게 합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봅시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나를 세상 끝으로 보내소서. 거친 땅, 광야에 사는 사나운 이교도들에게로 나를 보내소서. 세상의 모든 안락을 버리게 하소서. 당신을 섬기는 일이라면,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삶과 사역의 시간이 길고 짧음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과 일의 성취의 목적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합시다.
생명력 있는 참된 신앙에 대해 어떻게든 반대할 이유를 찾으려는 자들은 그의 특별한 신앙과 경건의 모습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 특징은, 바로 브레이너드가 기질적으로 쉽게 우울과 낙담에 빠졌다는 사실이다……우울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브레이너드는 너저분한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그는 천재적인 통찰력과 명확한 사고력, 면밀한 이성, 정확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브레이너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분별력을 가진 현명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탁월한 판단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특별히 내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에서 더 탁월했다. 그는 견고한 신앙심과 광적인 태도를 정확히 구별했다. 그것이 진리의 빛과 판단에 기반을 둔 이성적이고 성경적인 감정인지, 아니면 변덕스런 자만심과 상상력에 기초한 열렬한 감정인지를 정확히 구별했다.[Jonathan Edwards, ed., The Diary and Journal of David Brainerd, 송용자 역,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1), 54-55. 조나단 에드워즈의 서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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