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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 10월 16일, 휴 라티머(Hugh Latimer, c. 1487–1555) 순교, "그들의 악의에 찬 대우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내심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명랑하고 유쾌한 태도까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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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휴 라티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을 붙일 것이오.”


오늘은 휴 라티머(Hugh Latimer, c. 1487–1555)가 별세한 날입니다. 1555년 10월 16일, 라티머는 화형주에 묶인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잉글랜드 레스터셔의 터카스톤(Thurcaston)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졸업 후 대학의 설교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라티머는 토머스 빌니(Thomas Bilney)의 신앙고백을 듣고 회개와 각성을 경험했습니다. 종교개혁 사상을 가졌던 빌니는 1531년에 화형장에서 순교했습니다. 성인 및 마리아 숭배와 연옥, 화체설을 거부했던 라티머는 고난을 겪었고, 1535년에 우스터 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 설교자로 활약하다가, 메리 튜더가 왕위에 오르며 친로마교 정책을 수행하자 반역죄로 체포되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를 거부한 라티머는 니콜라스 리들리, 크랜머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고, 16개월 뒤 화형장에 섰습니다. 그는 불길 속에서 동역자를 위로했습니다.


래티머는 순순히 관리들이 옷을 벗기게 하고 셔츠만 입은 채 화형주에 섰다. 두 사람은 화형주에 서로 등을 맞댄 채 쇠사슬로 묶였다……두 사람의 고통이 빨리 끝나게 하기 위해 화약 한 자루를 줄 수 있도록 호송병 경계선 안에 도크를 설치하게 했다. 두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의 긍휼의 표시로 감사히 받아들였다. 불이 붙자 래티머는 동료 순교자를 격려했다. “선한 위로 가운데 거하시오. 리들리 선생, 용기를 갖고 사내답게 행동합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을 잉글랜드에 붙일 것이오.” 래티머는 곧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비교적 고통을 덜 받았다. 그는 이글거리는 불길 위로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곧 연기에 질식당했다.[Andrew Atherstone, The Martyrs of Mary Tudor, 송용자 역 『순교자들과 떠나는 여행』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98.]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선구자였던 래티머는 몸이 연약했기 때문에 동료들만큼 많은 저작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과 조국의 회복을 소망하며 옥중에서 열렬히 기도했고, 고통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습니다. 다른 주교들이 새해선물로 왕에게 금품을 선물할 때, 라티머는 신약성경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적은 손수건을 헨리 8세에게 선물하는 담대함을 보였습니다. 도망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피의 메리가 보낸 사람들을 피하지 않았던 라티머.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60대 노인이 마지막까지 보여준 담력은 타협의 세대를 사는 우리를 깨웁니다.


래티머가 런던으로 올라가 스미스필드에 갔을 때 그곳이 자기를 위해서 오랫동안 신음해 왔다고 명랑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위원회 앞으로 불려 나가 냉소적인 가톨릭교도들의 모든 조롱과 비웃음을 참을성 있게 견뎌 내고 다시 탑 속으로 들어갔다……그리스도의 은혜로 그의 적들이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오랫동안 감금 생활을 참을성 있게 견뎌냈다. 그들의 악의에 찬 대우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내심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명랑하고 유쾌한 태도까지 보였다. 주님께서 그에게 강건한 영을 주셨기 때문에 그는 감옥의 끔찍한 환경과 고통을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적들이 그를 경멸하는 잔인한 처우에도 웃을 수 있었다.[Marie Gentert King, ed., Foxe’s Book of Martyrs, 양은순 역, 『기독교 순교사화』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9),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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