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아우구스투스 토플레디,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
오늘은 아우구스투스 토플레디(Augustus Montague Toplady, 1740-1778)가 출생한 날입니다. 1740년 11월 4일, 토플레디는 잉글랜드 서레이(Surrey) 주의 파넘(Farnham)에서 태어났습니다. 웨스트민스터 학교와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한 그는 메서디스트(Methodist)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유럽대륙의 종교개혁자 제롬 잔키우스와 17세기 잉글랜드의 청교도 토마스 맨톤의 작품을 읽고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버렸습니다. 칼빈주의자가 된 토플레디는 1763년에 “만세 반석 열리니”(Rock of Ages)라는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는 큰 바위 아래에서 폭풍우를 피한 경험을 토대로 시를 지었습니다. 이 찬송은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피 흘리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 피한 자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1.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2.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 쉬임 없이 힘쓰고
눈물 근심 많으나 구속 못할 죄인을 예수 홀로 속하네
3.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주소서
4. 살아생전 숨 쉬고 죽어 세상 떠나서 거룩하신 주 앞에
끝날 심판 당할 때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1769년에 토플레디는 잔키우스의 책을 번역하여 『진술되고 주장된 전적인 예정 교리』(The Doctrine of Absolute Predestination Stated and Asserted)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이 책에 대해 비판했고, 토플레디는 맞대응했습니다.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논쟁으로 인해, 따뜻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다소 격정적인 어조로 글을 썼습니다. 토플레디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취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인 논쟁 방법을 취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만세 반석”을 부르며 은혜의 교리를 견지했던 토플레디를 기억합시다. 그의 연약함을 기억하며 우리도 범사에 신사적일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토플레디는……철저하게 ‘타락 전 예정설’을 지지하고……‘하이퍼 칼빈주의자’의 길을 선택하였다……‘돌트 신경’ 작성자들이……주장하던 주제들을 확신하였고, 그의 이런 신학적 견해가 여러 저술에 담겨 있다……토플레디는 영국 칼빈주의 부활을 염원하였다. 그는 영국 종교 개혁자들이 칼빈주의자였고, 어거스틴의 신학이 이와 같으며, 성경이 증거하는 신학이므로 이런 초기 정신을 계승하여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런 핵심적 증거가 39개 조항에 들어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토플레디가 살던 시대에 이 조항들은 교리적 표준으로서 거의 기능을 하지 못했고, 영국 칼빈주의는 청교도 시대가 지나고 난 후에 큰 고난을 당했다. 그래서 그는 논쟁의 방식을 동원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예를 들어, 「영국 교회의 칼빈주의적 교리에 관한 역사적 증명」에 보면, 풍부한 연구와 독서를 통한 지식을 제시하고 있다.[김재성, 『개혁신학의 정수』 (서울: 이레서원, 2003), 4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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