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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1월 6일, 빌리 선데이(William Ashley "Billy" Sunday, 1862–1935) 별세, "공화당과 1차 세계대전을 지지한 진보적 정통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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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빌리 선데이, 누가 제 손을 잡음으로써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겠습니까?”


오늘은 빌리 선데이(William Ashley "Billy" Sunday, 1862–1935)가 별세한 날입니다. 1935년 11월 6일, 전도자 빌리는 시카고(Chicago)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고학하던 그는 프로야구선수로 명성을 날리던 중 거리전도를 통해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거듭났습니다. 빌리 선데이는 1903년에 장로교 목사로 안수 받은 후, 부흥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대형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는 1억 명 가량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중 백만 명 이상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전해집니다. 지옥과 술집을 동일시하며 금주를 강조했던 빌리의 사역으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이 유익을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전도방식이 과연 성경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선데이는……“갱생의 길” 제도를 추가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고조시켰다. 선데이는 전직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유명세를 앞으로 나오도록 유혹하는 용도로 써먹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복합적인 동기로 갱생의 길 대열에 참여하여 선데이의 손을 붙잡았다. 선데이는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나와 제 손을 잡음으로써 이 큰 문제를 해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개인적인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시겠습니까? 앞으로 나오십시오.” 이런 행위는 갱생의 길에 참여하는 육신적 행위가 곧 구원하는 믿음의 행위라는 관념을 전달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언론 보도다. “개종자들은 선데이의 손을 붙잡으려고 급히 뛰어나갔다. 어젯밤 갱생의 길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425명의 사람들이 선데이의 손을 붙잡고 고백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등록되기 위하여 예배당 강당 앞으로 벌떼처럼 몰려들었다.”[Eroll Hulls, Who Saves, God or me, 김귀탁 역, 『칼빈주의 기초』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103-104.]


초청을 듣고 앞에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을 때 그는 대열을 두 줄로 나누어 두 손을 흔들며 응수하기도 했습니다. 빌리는 보수적 신학을 가진 근본주의자이자,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동조하는 복음주의자였으며, 공화당과 1차 세계대전을 지지한 진보적 정통주의자였습니다. 분명한 전달을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던 그는 불투명한 재정 운용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서에의 호소와 의지적 결단이 전도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죄와 심판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강단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고양이처럼 달려가서 “홈”에 미끄러져 들어와서는 “세이프”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또는 의자나 설교단으로 달려가서는 자신을 미국 국기로 감싸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금주사업에 대한 반대에 함께 참여하도록 호소할 때에 그 연기는 참으로 잊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즈는 그의 설교 모습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그는 초록색 카펫으로 뒤덮인 강단을 오르내리면서……손을 흔들고, 종종 한 쪽 무릎을 차올리고, 공원을 걷는 말처럼……요란스럽게 왔다 갔다 하거나, 한 쪽 발로는 의자를 밟고 또 다른 쪽 발은 설교단에 올려놓거나……몸을 앞으로 뒤로 몸을 굽혔다 폈다 하거나, 다리 사이로 손수건을 흔들며……긴 악담들을 퍼부으면서……엄청난 에너지와 결단력, 그리고 고결한 열정을 보여주었다.”[William H. Willimon and Richard Lischer, ed., Concise Encyclopedia of Preaching, 이승진 역, 『설교학 사전』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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