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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년 11월 11일, 마틴 부처(마르틴 부써, Martin Bucer, 1491-1551) 출생,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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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마틴 부처,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노력했던 평화의 개혁가”


오늘은 마틴 부처(마르틴 부써, Martin Bucer, 1491-1551)가 태어난 날입니다. 1491년 11월 11일, 부처는 슐레트슈타트(Schlettstadt)에서 출생했습니다. 1508년에 도미니칸 수도사가 된 그는 스콜라신학과 에라스무스, 루터를 깊이 연구했습니다. 부처는 1518년에 루터를 만나고 난 후 종교개혁의 반열에 서게 됩니다. 1521년 도미니쿠스 수도회에서 탈퇴하고, 1523년에 결혼한 그는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부처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노력했던 평화의 개혁가였습니다. 그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이신칭의의 교리를 설교했는데, 부처에게 있어서 칭의는 의(義)의 전가와 분여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첫째, 우리를 선행(先行)하시고, 모든 불경건을 용서하시는 것이 그의 자비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는 확실히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불경건한 사람을 칭의하시지만, 불경건은 용서되고, 사면(赦免)된다. 또한 그때 성령이 주어지는 바, 성령은 모든 불경건은 피하게 하시고, 경건에 대한 열심을 품게 하신다. 그 결과 이런 방법으로 성령은 우리에게 다음에 따라오는 유익들(은혜들)을 주신다. 마치 그것이 경건에 대한 상급과 보상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성령 자신에 의해서 주어진 경건인데 말이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지도 않고 사면하시지도 않은 자의 불경건은 의로우신 하나님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의 불경건 속에 계속되는 것처럼, 또한 그는 그의 불경건 때문에 하나님을 미워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들에 따라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의 불경건에 대해 처벌하신다.[최윤배, 『잊혀진 종교개혁자 마르친 부처』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266-67에서 재인용.]


교회연합을 위해 노력한 부처는 설교와 성찬을 결합시킨 예배를 실시했으며,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갱신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는 제네바 개혁에 실패하고 추방당한 칼빈을 스트라스부르크로 초청하여 정착을 도와주었습니다. 부처는 치리를 통한 개혁을 강조했는데, 이는 칼빈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신성로마 황제가 강요한 가협정(Interim, 로마교적 색채가 강했음)을 거부한 것으로 인해 25년간 섬겼던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후 잉글랜드로 건너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가르치며 「그리스도 왕국론(De Regno Christi)」을 저술했습니다. 대화와 타협에 있어 우리는 얼마나 부족한지요. 마틴 부처의 너른 마음과 관용의 정신이 그립습니다.


부써의……예배신학은 개혁교회 예전의 기원이 되는 슈트라스부르크 예배문과 제네바 예배문의 기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예배형식 전부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부써의 예배문은 형식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 아니라 중세 예배의 두 형태인 prone과 Missa를 종합하여 보다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교부들의 가르침에 충실하도록 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그것은 본질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즉 중세의 예배를 대표하는 미사는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그것에 참여하는 것이 참여자의 덕을 쌓는 공로가 된다는 개념이 지배적이었던 반면에, 부써의 예배 개념은 제사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단회성을 강조함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 개념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기독교 예배를 찬미와 감사의 제사로 정의함으로써 예배행위에 있어서 모든 인간의 공로개념을 거부했다.[황대우 편저, 『삶, 나 아닌 남을 위하여』 (서울: SFC, 2007),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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