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헨리 프란시스 라이트,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오늘은 헨리 프란시스 라이트(Henry Francis Lyte, 1793-1847)가 별세한 날입니다. 1847년 11월 20일, 라이트는 프랑스 남부의 항만 도시인 니스(Nice)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합니다. “오, 죽음보다 끔찍한 것은 없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보다 먼저 그 무덤에 내려가셨지.” 라이트는 요양(療養)을 위해 이탈리아로 가던 중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모진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무책임한 아버지는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는 그가 9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라이트는 더블린(Dublin)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했고, 목회자로 안수받은 후인 1816년경에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했던 그는 찬송가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Abide with me, 통일찬송가 531장)의 작사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2.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 하소서
3. 주 홀로 마귀 물리치시니 언제나 나와 함께 하소서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사랑의 주여 함께 하소서
4.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 주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 하소서
헨리 라이트는 평생 연약한 건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겨울에는 유럽대륙으로 건너가서 몸을 회복한 후 돌아와야 했으며, 특별히 호흡기 질환인 천식과 기관지염 때문에 제대로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말년에는 그의 회중들 중 다수가 교회를 떠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라이트의 고(高)교회적인 입장 때문에 많은 이들이 형제단을 비롯한 자유교회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나 라이트는 인간의 타락을 강조했던 복음주의자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의학의 봉사를 받지 못하던 때에, 그는 수은, 출혈, 청산(靑酸) 등을 이용한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라이트가 마지막 설교를 전한 후 적어 내려간 고백은 아름다운 노래의 옷을 입고 우리의 예배 시간에 등장합니다. 그의 시(詩)는 우리로 하여금 죽음과 영원, 임마누엘을 생각하게 합니다.
의사는 그에게 영국을 떠나 따뜻한 이탈리아로 이주할 것을 권했습니다. 라이트 목사는 그날 주일예배에서 자신과 20년 넘게 함께해 온 교인들에게 마지막 성찬식을 행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설교는 들릴 듯 말 듯 힘이 없었습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죽음을 맡기고 앞으로 맞게 될 엄숙한 시간을 준비하기를 바랍니다.”라며 설교를 마쳤을 때, 모두가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이탈리아에 가면 외로운 나날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브릭스햄의 해변을 천천히 걸으며, 라이트 목사는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한 마지막 설교를 떠올리며 여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종이에 적었습니다. 이 글이 바로 찬송 “때 저물어 날이 어두니”(새481)입니다.[김남수, 『은혜와 감동이 있는 숨겨진 찬송이야기』 (서울: 아가페북스, 2012), 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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