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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위대한 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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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위대한 2인자”

오늘은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가 츠빙글리의 후계자로 선정된 날입니다. 1531년 12월 9일, 불링거는 취리히(Zürich) 교회의 수석 목사가 되었습니다. 2개월 전, 츠빙글리는 전사했고, 바통은 불링거의 손에 들려졌습니다. 츠빙글리는 불링거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사했습니다. “사랑하는 하인리히, 하나님께서 자네를 지키시기를 원하네. 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충성하게나.”

1531년에 불링거가 맡은 임무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취리히에서 이미 시작된 개혁을 지속하는 것이다. 둘째는 대중들에게 특히 성경에 기초한 새로운 신앙에 관해서 더욱 분명하고도 온전한 이해를 돕는 것이었다. 셋째는 취리히와 이미 같은 마음을 품은 공동체들과 교제의 끈을 견고히 하는 것이었다……하나님의 말씀을 거의 매일 전했으며, 논문들과 변증들 그리고 주석들을 꾸준히 저술했다. 상당수의 서신을 통해 안내를 해 주었으며, 피난민들을 위해서, 특히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온 피난민들을 맞아들였다. 또한 종교개혁을 수용한 모든 교회들과 함께 공동의 복음적 진영을 세웠다.[G. W. Bromiley ed., Zwingli and Bullinger, 서원모·김유준 역, 『기독교고전총서 19: 츠빙글리와 불링거』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1969]), 51.]

불링거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를 공포한 프리드리히 3세의 요청으로 개혁교회 교리 해설서를 보내줍니다. 이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서였으나,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이 원고를 출판하도록 하였습니다. 불링거의 초고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스위스 교회의 공동신앙고백으로 채택되었습니다(1566년). 이것을 제2 스위스 신앙고백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이라 부릅니다. 불링거의 신앙고백 25장에 보면 청소년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니, 교회 목회자들은 어린이들에게 일찍부터 우리가 믿는 바를 부지런히 가르쳐 신앙의 기초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십계명과 사도신경과 주기도를 가르칠 뿐 아니라 성례의 의미와 우리 신앙의 요점과 그 밖에 기초적인 것을 잘 설명하여 가르쳐야 한다. 교인들은 성심성의를 다하여 자녀들이 신앙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할지니, 자녀들이 옳게 신앙 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김영재, 『기독교 신앙고백』 (수원: 영음사, 2011), 182.]

불링거는 루터와 루터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는 논쟁보다는 관대함의 정신으로 과도기를 이끌었습니다.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을 계승·발전시킨 사람은 칼빈이었습니다. 불링거는 지역적 리더십에서 츠빙글리를 계승한 인물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불링거는 위대한 2인자였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는 사막의 모래 언덕 같습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성도의 만족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만이 드러나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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