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윌리엄 퍼킨스를 무시했던 사람”
오늘은 청교도 로버트 볼턴(Robert Bolton)이 안식의 땅에 들어간 날입니다. 1631년 12월 17일 토요일 오후 5시경, 60세의 볼턴은 말라리아로 인한 고열에 시달리다 눈을 감았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마친 볼턴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싶은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볼턴은 30세에 목회자가 되었고, 그의 생애의 목표는 자신의 설교 가운데 사람들의 영혼이 회심하는 것이었다. 그의 설교는 담대하고 타협되지 않은 직접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는 실로 기도의 사람이었는데, 하루에 6번 기도하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었다. 특히 볼턴은 주의 성찬을 인도하기 위해서 수일 전부터 기도와 금식으로 준비하였다. 그리고 그는 옥스퍼드의 브레슨-노스 대학(Brasen-Nose College)의 교수가 되었으며, 노스헴톤쉬어(Northamptonshire)의 브로우톤(Broughton)의 교구 목사로 20년 동안 봉직하였다.[김홍만, 『청교도 열전』 (서울: 솔로몬, 2009), 164.]
하지만 볼턴은 회심 전에는 신성모독적인 맹세를 즐기고, 안식일을 무시하며, 무대연극을 즐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옥스퍼드 졸업생이자 교수로서 자신만만하던 그는 윌리엄 퍼킨스를 “메마르고 공허한 연구원, 그저 그런 수준의 학자”(a barren, empty fellow, and a passing mean scholar)로 평가했습니다. 볼턴은 동료 연구원 앤더턴(Anderton)과 친해지면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앤더턴은 로마가톨릭이 볼턴에게 유익을 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두 사람은 유럽대륙으로 건너가 가톨릭신학교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앤더턴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볼턴은 옥스퍼드로 되돌아왔습니다.[Robert Bolton, A Treatise on Comforting Afflicted Consciences, 30-31.]
로버트 볼턴의 교만은 토마스 피콕과의 만남으로 인해 서서히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경건한 교역자였습니다. 피콕과의 대화 속에서 볼턴은 영생의 가치와 그것을 얻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볼턴은 마틴 루터와 같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깊은 죄의식 속에 몇 달 동안 괴로워했습니다. 마침내 볼턴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고통 받던 양심이 참된 위로를 찾게 된 것입니다.
1626년에 처음 출판된 볼턴의 저서『상한 양심을 위로하는 것에 대한 논증』(A Treatise on Comforting Afflicted Consciences)는 회심의 과정에 있어 볼턴 자신의 경험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본서를 통해 성령의 역사와 율법으로 인한 죄책으로 고통 받는 양심이 복음으로 위로받고 치유되었습니다. 존 맥아더는 본서의 재출판(1991)을 축하하면서 지난 20년간 이 책만큼 상하고 애통하는 양심을 성경적으로 깊이 다룬 책은 없었다고 평했습니다. 한때는 위대한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를 무시했지만, 상한 심령 속에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 로버트 볼턴. 하나님이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내 자신이 가장 큰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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