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1858년 2월 6일,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 출생, "최초의 내한 목사선교사"

반응형


2
 6일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목사 선교사, 아펜젤러의 출생

 

1885 4 5, 제물포에서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목사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처음으로 조선 땅에 발을 디딘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 한 사람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가 태어난 날입니다. 아펜젤러는 1858 2 6일에 펜실베이니아 주 손더튼에서 출생하여 독일 개혁파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18세에 회심하였고, 1881년 대학교 3학년 때 선교 사업에 헌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드루(Drew)신학교 시절에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하나였던 J. S. 워즈워드는 해외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특히 조선에 가기를 원하였습니다. 아펜젤러는 일본 선교 사업에 지원할 것을 고려하였으나, 워즈워드가 미국을 떠날 수 없게 되자, 그 대신 조선에 가서 선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펜젤러는 1883년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열린 신학교연맹 회합에 참석하였는데 이는 해외선교 진흥을 위해 신학생들이 만든 모임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호레이스 언더우드를 만났습니다. 언더우드 역시 이때 조선에 선교사로 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아펜젤러는 감리교인 엘라 다지(Ella Dodge)와 결혼하여 함께 조선에 오게 됩니다.


신혼의 단꿈과 젊음의 야망을 내어 버리고 100여 년 전 이 땅에 온 아펜젤러 선교사는 인천내리교회, 정동제일교회를 세웠고 배재학당(현 배재고등학교)을 설립하여 한국 근대교육의 모습을 바꿔놓는 데 공헌하였습니다. 1902 6 11일 그는 성경번역위원회 참석차 배편으로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중 어청도 인근에서 선박 충돌로 순직했습니다. 한창 일할 44세의 나이에 타국에서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못하여 현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묘비만 세워져 있습니다.


그가 순직한지 110여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조선을 사랑하여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이 땅에 와 아낌없이 봉사했던 아펜젤러. 이는 특별한 소수만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런 신앙의 선배가 있음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면 어느 곳이든 가겠노라는 기도를 드립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셨으니 우리의 그 어떤 헌신도 감히 희생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부르심 따라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