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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욥기 4장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이야기하는 재주”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욥기 4:17)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의 탄식을 듣고 대답합니다. 세 친구들 중 가장 먼저 발언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가장 연장자이거나 지혜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욥기가 4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 많은 부분이 욥과 그의 친구들의 대화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대화를 성경에 기록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을 아멘으로 받읍시다. 엘리바스의 논증에는 이중성(二重星)이 있습니다. 즉, 옳은 면도 있고 그릇된 면도 있다는 말입니다. 엘리바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한마디로 “고통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마땅한 보응이다.”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높이십니다.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기 4:8) 그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사상에 근거하여 욥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존재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17절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겠느냐? 사람이 그의 창조자 앞에서 정결하겠느냐?”(NASB)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사 64:6). 지금 당장 죄로 인한 형벌을 받는다 해도 항거할 명분이 없는 나. 그것이 전 인류의 비참함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하지만 엘리바스는 욥 앞에서 율법교사 노릇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도 죄인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무지는 욥의 처지와 자신의 전제를 잘 연결시키지 못하는 데에서도 드러납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존경받는 의인에서 거지 신세가 되어버린 것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바스는 친구 욥을 정죄하며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기 4:7) 엘리바스의 사상이 옳다고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의 태도와 적용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는 엘리바스처럼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형제를 위로하려 한다면 침묵하는 가운데 함께 있어주는 것이 충고보다 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니 이해할 수 없는 역경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는 지체를 볼 때, “왜 저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생각하기 전에, 절제의 미덕을 발휘합시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저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지혜롭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죄인과 병자들의 친구 되신 예수님처럼 위로하고 싶습니다. 주여, 나의 모든 언행심사를 사랑으로 다스려주소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에베소서 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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