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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4월 15일, 최권능(1869-1944)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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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최권능(1869-1944), ‘내 몸에는 예수님이 가득 차 있소.’”

오늘은 최권능(1869-1944) 목사가 별세한 날입니다. 1944년 4월 15일 오후 1시, 옥고(獄苦)와 금식으로 연약해진 최권능은 “하늘에서 온 전보”를 받았습니다. 눈을 감기 전, 그는 가족들과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가사 그대로 고생과 수고로 점철된 인생길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생과 수고 다 지나간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인애한 주 모시고 서는 것 영원히 내 영광 되리로다

14년간 만주에서 전도하며 28개의 교회를 개척한 최권능(본명은 최봉석)은 평양으로 돌아와서도 “예수 천당”을 외치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소똥에서 콩을 빼어먹고 하나님께 감사할 만큼 고생 속에서 연단된 전도자의 음성은 평양 사람들의 마음과 귀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새벽 4시의 평양. 인적이 끊긴 거리에는 싸늘한 바람만이 흙먼지를 날리고, 별을 품은 대동강조차 고이 잠든 도시를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새벽 기도를 재촉하는 교회의 종소리보다 앞선 시간, 모란봉이 떠나갈 듯 평양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예수 천당!”……새벽잠을 못 이룬 노인들은 손때 묻은 돋보기로 성경을 읽다가 최권능 목사의 새벽 가두전도 소리가 들려오면……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격려를 보냈다. 아낙들은 최권능 목사의 외침 소리를 자명종 시계 삼아 양말 공장에 다니는 식구들의 아침밥을 서둘러 짓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새벽 기도회에 나가기 위해 성경을 손에 쥐었고, 수험생들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다시금 책을 펴고 자리에 앉았다. 이처럼 1920년대 말, 평양의 아침은 최 목사의 “예수 천당”이라는 외침 속에 밝아왔다.[박종구·김충남, 『예수천당 - 최권능 목사 일대기』 (서울: 드림북, 2005), 17-18.]

오늘날에도 최권능의 방식을 따라 전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최권능은 그의 시대에, 가장 자기 자신다운 방법을 취한 것입니다. 단순하게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보며 무작정 비난하지 맙시다. 내 안에는 저런 불이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또한 합법적이고 지혜로운 수단으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합시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한국 교계가 신사참배 문제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최 목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앞장서지요. 매는 몽땅 내가 혼자 맡아서 맞을 테니까.” 1939년 5월 그는 선천 경찰서에 구금되어 신원조사가 끝나자 평양 경찰서로 넘어갔다. “취조라는 건 때리는 건가, 사실을 알아보는 건가?” 취 목사는 몽둥이 세례를 안기는 형사에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항의했다. “닥쳐! 여우같은 놈의 늙은이!” 형사가 곤봉으로 더욱 세차게 난타했다. 최 목사는 콘크리트 바닥에 거꾸러졌다. 온몸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입에서는 예수탄이 튀어나왔다. “예수 천당!”……“영감 말끝마다 ‘예수 천당, 예수 천당’ 하는데, 대체 그게 무슨 뜻이오?” “내 몸에는 예수님이 가득 차 있소. 그래서 내 몸이 꿈틀거릴 적마다 예수님이 내 입에서 밖으로 튀어나와요. 형사가 나를 때리면 때릴수록 예수님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요.”[최현, 『한국 신앙의 거성』 (서울: 한국문서선교회, 2003), 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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