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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1
"I know thta my Redeemer liveth" (Job 19: 25).
The marrow of Job's comfort lies in that little word "my"--"my Redeemer," and in the fact that the Redeemer lives. Oh, to get hold of a living Christ. Do not be content until by faith you can say, "Yes, I cast myself on my living Lord, and He is mine." You may think it is presumption to say, "He lives as my Redeemer;" yet, remember, if you have but faith as a grain of mustard seed, that little faith entitles you to say it. But there is also another word here, expressive of Job's strong confidence--"I know." To say, "I hope so, I trust so," is comfortable; and there are thousands in the fold of Jesus who hardly ever get much further. But to reach the essence of consolation you must say, "I know." Ifs and buts are sure murderers of peace and comfort. Doubts are dreary things in time of sorrow. If I have any suspicion that Christ is not mine, then there is vinegar mingled with the gall of death. But if I know that Jesus lives for me, then darkness is not dark. Even the night is light about me. Surely if Job, in those ages before the coming and advent of Christ, could say, "I know," we should not speak less positively. A living Redeemer, truly mine, is joy unspeakable.
4월 21일
제목 : 나의 구속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욥 19: 25).
욥이 받는 위안의 핵심은 "나의"--"나의 구속자"--라는 짧은 말과 그 구속자가 살아 계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오,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붙잡기를? 믿음으로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살아계신 주님에게 던질 수 있고, 그분은 내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나의 구속자로 살아계신다"라고 말하는 것이 주제넘다고 그대는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대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 작은 믿음이 그대가 이 말을 할 자격을 준다는 것을. 그러나 여기 또 다른 말 한마디, 곧 욥의 강한 확신을 나타내는 말이 있습니다--"내가 알기에는."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위안을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좀처럼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위로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대는 반드시 "나는 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만약과 그러나는 평안과 위로를 확실하게 죽이는 것들입니다. 의심은 슬픔의 때에 음울한 것입니다. 나에게 그리스도가 내 구속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있다면, 죽음의 쓸개즙이 섞인 식초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어둠은 어둡지 않습니다. 밤조차도 내 둘레에서 빛이 됩니다. 진정으로 만일 욥이 그리스도가 오시고 강림하시기 전의 시대에 "내가 알기에는"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그만큼 확신에 차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나의 구속자이신 살아계신 구속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I know thta my Redeemer liveth" (Job 19: 25).
The marrow of Job's comfort lies in that little word "my"--"my Redeemer," and in the fact that the Redeemer lives. Oh, to get hold of a living Christ. Do not be content until by faith you can say, "Yes, I cast myself on my living Lord, and He is mine." You may think it is presumption to say, "He lives as my Redeemer;" yet, remember, if you have but faith as a grain of mustard seed, that little faith entitles you to say it. But there is also another word here, expressive of Job's strong confidence--"I know." To say, "I hope so, I trust so," is comfortable; and there are thousands in the fold of Jesus who hardly ever get much further. But to reach the essence of consolation you must say, "I know." Ifs and buts are sure murderers of peace and comfort. Doubts are dreary things in time of sorrow. If I have any suspicion that Christ is not mine, then there is vinegar mingled with the gall of death. But if I know that Jesus lives for me, then darkness is not dark. Even the night is light about me. Surely if Job, in those ages before the coming and advent of Christ, could say, "I know," we should not speak less positively. A living Redeemer, truly mine, is joy unspeakable.
4월 21일
제목 : 나의 구속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욥 19: 25).
욥이 받는 위안의 핵심은 "나의"--"나의 구속자"--라는 짧은 말과 그 구속자가 살아 계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오,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붙잡기를? 믿음으로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살아계신 주님에게 던질 수 있고, 그분은 내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나의 구속자로 살아계신다"라고 말하는 것이 주제넘다고 그대는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대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 작은 믿음이 그대가 이 말을 할 자격을 준다는 것을. 그러나 여기 또 다른 말 한마디, 곧 욥의 강한 확신을 나타내는 말이 있습니다--"내가 알기에는."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위안을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좀처럼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위로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대는 반드시 "나는 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만약과 그러나는 평안과 위로를 확실하게 죽이는 것들입니다. 의심은 슬픔의 때에 음울한 것입니다. 나에게 그리스도가 내 구속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있다면, 죽음의 쓸개즙이 섞인 식초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어둠은 어둡지 않습니다. 밤조차도 내 둘레에서 빛이 됩니다. 진정으로 만일 욥이 그리스도가 오시고 강림하시기 전의 시대에 "내가 알기에는"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그만큼 확신에 차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나의 구속자이신 살아계신 구속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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