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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4월 22일, 부산 최초로 세례식이 거행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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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부산 최초의 세례식

 

오늘은 부산 최초로 세례식이 거행된 날입니다. 1894년 4월 22심상현(심상형), 이도염(이도념), 이귀주(이기주)가 세례를 받았습니다집례자는 베어드(William M. Baird, 1862-1931, 한국 이름은 배위량[裵偉良]) 선교사였습니다이것은 부산에서의 첫 세례일 뿐만 아니라 한강 이남에서 거행된 최초의 세례식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순회전도를 중요하게 생각한 배위량은 1891년 부산에 내려가 5년 동안 현지탐사와 전도여행에 힘썼습니다그는 부산에 한문학교와 초량교회를 세웠고사랑방을 공개하여 전도의 장()으로 삼았습니다이날 세례를 받은 심상현은 멘지(B. Menzies) 선교사의 어학선생이었습니다완곡하게 신앙을 거부하던 그는 전도자들의 포기하지 않는 기도와 사랑어린 권유로 마침내 신앙고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베어드는 이들이 진실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지제사를 포기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지난 주일(4월 22우리는 처음으로 세 명의 한국인에게 세례를 주는 기쁨을 가졌다그들은 부산에서 처음으로 세례 받는 사람들이다……이전에 드렸던 어떤 예배보다도 더욱 훌륭한 예배인 것 같았다그들은 심상형그리고 두 명의 노인들호주 숙녀들과 관계있는 이도념(Yi To Nyum)과 기주(Kwi Chyoo)였다예배는 부산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거행되었다찬송기도성경을 읽고 우리에게 그와 같은 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심 씨가 처음으로 세례를 받고 그 다음에 두 여인이 세례 받았다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를 얻었다.[Richard Baird, William M. Baird: A Profile by Richard H. Baird김인수 역배위량 박사의 한국선교』 (서울쿰란출판사, 2004), 82. 1894년 5월 3일 일기.]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전도는 쉽지 않았습니다구경꾼들은 욕설을 퍼붓고 벼슬아치들은 놀려대기 일쑤였습니다신앙서적을 배포해도 받지 않거나 돌려주곤 했습니다부산의 첫 세례는 눈물로 씨를 뿌린 수년간의 열매였던 것입니다사람들이 무관심을 보인다 해도 전파하는 일에 한결같이 열심을 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하나님께서 싹을 틔우시고 꽃피어 열매 맺게 하시니소출이 없어 보여도 부지런히 말씀의 씨앗을 뿌립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10).

 

부산 사역은……고된 삶이었다낭만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당시 부산경남 지역에는 진성 콜레라가 만연하여 베어드는 자신의 일기에서 거의 매일 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을 화장하는 연기가 이곳저곳에서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베어드는……서상륜과 함께 부산과 남해안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도를 했다그러나 뚜렷한 결실은 없었다. 1892년 보고서에 의하면,베어드는 한인사회에 우리가 천주교와 다른 새 종교를 전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밖에 더 하지 못했다고 했다서상륜이 1개월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돌아간 후 마포삼열 선교사의 권유로……그의 동생 서경조가 2개월가량 베어드 선교사를 도왔다.[박용규,한국기독교회사 1』 (서울생명의말씀사, 2004),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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