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스왈른과 사과나무”
오늘은 윌리엄 스왈른(William L. Swallen, 한국명 소안론[蘇安論], 1865-1954)이 별세한 날입니다. 1954년 5월 8일, 북장로교선교사 스왈른은 89년의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스왈른은 1892년에 부인과 함께 우리나라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는 서울·원산·평양 등지에서 전도했고, 1901년 9월에 선교사와 한국인 대표가 참여하는 ‘조선예수교장로교공의회’의 회장으로 섬겼습니다. 마포삼열과 함께 평양신학교를 세우는 일에도 힘쓴 스왈른은 초기 한국교회의 지도자 김익두, 이기풍 등의 회심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하루는……스왈른(Swallen)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갑자기 아버지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평양에서 돌로 때려눕힌 양코배기의 화신인가 했다……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방안이 환해지더니 머리에 가시관을 쓴 분이 나타났다……“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왈른 선교사의 얼굴은 희색이 만연해지더니 초면인 아버지의 손을 꼭 쥐고 먼저 머리 숙여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들고 아버지를 한참 쳐다보더니 띄엄띄엄 서투른 조선말로 “분명히 당신을 예수님이 귀하게 쓰실 징조요. 당신 죄는 예수님이 다 사하여 주셨소. 기뻐하시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이분 얼굴을 보자 모습이 비슷한 마포 선교사 생각이 나서 아이들처럼 땅에 주저앉아 엉엉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스왈른 목사에게 하나도 숨김없이 낱낱이 과거에 지은 죄를 고했다. 또 마포 선교사 집에 돌팔매질하던 일과 장터에서 만나 돌로 턱을 때려 피 흘려 쓰러지게 한 무서운 죄를 빠짐없이 고백하고 회개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맹세하였다.[이사례, 『이기풍 목사의 삶과 신앙』 (서울: 기독교문사, 2007), 33-34.]
스왈른은 우리나라에 사과를 보급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낸 후 사과나무 묘목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대구와 황주의 선교본부에 전달된 사과나무는 재배와 개량에 성공하여 좋은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복음전도사업과 함께 농촌경제 발전에 공헌한 스왈른의 모범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영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은자의 나라”(Hermit Kingdom)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선교사들을 잊지 맙시다.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심정으로 인내하고 땀 흘렸던 그들은 영적인 일에만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병을 고쳐주고,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했으며, 교육 사업에 앞장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전도는 어떠한지 돌아봅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8).
1894년 봄, 소안론은……기일 부부와 함께 함경도 원산지역에 임명을 받았다. 그곳에서 소안론은 한국인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르면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였다. 너무 과로한 나머지 고열로 인해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의 아내 샐리의 애정 어린 간호로 병을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1899년 봄에 선교지가 원산에서 평양으로 변경되었다. 평양에서 소안론은 도시 외곽에 살면서 농사와 과수원을 경작하면서 그 방법을 한국인들에게 전해주는 효과적인 전도를 하였다.[조경현, 『초기 한국장로교 신학사상』 (서울: 그리심, 2011),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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