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진젠도르프, 경건과 선교”
오늘은 진젠도르프(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가 별세한 날입니다. 1760년 5월 9일, 진젠도르프는 이 땅에서의 60년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박해를 받아 피난 온 후스(John Huss)파 교인들을 위해 피난처를 제공했는데 이를 “헤른후트(Hernhut, 주님의 망대)”라 합니다. 훗날 모라비안 형제단(Moravian Brethren)으로 불린 이들은 진젠도르프를 지도자로 인정했고, 그가 제공하는 훈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를 세우고자 노력했고, 선교와 부흥을 위해 24시간 릴레이 연속기도를 하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이들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탕진했고, 작센에서 추방까지 당했으나 영국과 런던을 방문하여 계속해서 사역에 힘썼습니다.
진젠돌프는……10세에 할레 신학교에 들어가 프랑케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때부터 동료들과 겨자씨 회를 조직하여 그 단체를 이끌어 나갔다. 그의 신앙관이 확립되고 해외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할레에서 프랑케에게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할레에서 계속 신학교육을 받기를 원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비텐베르크(Wittenburg) 대학에 가서 법률 공부를 하게 됐다.[김의환, 『기독교회사』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4), 336.]
진젠도르프의 지도 아래에서 모라비아 형제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훈련받았습니다. 풍랑 속에 떨고 있던 존 웨슬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라비아 교인들을 보고 도전을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서인도와 그린란드, 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어떤 선교사들은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노예로 팔아 그곳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자신을 부인하는 데로 나아간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아 교도들의 헌신에 감동을 받습니다. 복음을 위해 기쁘게 자원하여 나를 버리게 하소서.
진젠도르프의 끈질긴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라비아 교회는 점차 분리해 가다가 완전히 하나의 독립교파로 분립하고야 말았다. 프러시아에서 한 교파로 공인받은 것은 1742년이었다. 모라비아 교회가 주교, 장로, 집사직을 다 갖춘 교회로서 조직을 마친 것은 1745년의 일이었다. 정체는 장로교에 훨씬 가까웠다. 영국 의회도 1747년 이 교회를 “역사 있는 프로테스탄트 감독(Episcopal) 교회”로 인정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작센 정부와의 타협이 다시 이루어져 진젠도르프가 본국에 귀환하게 되었을 때 모라비아 교회는 하나의 교회로 루터교와 병존한다는 인가를 받고 있었다. 이때를 전후하여 이 교회는 아름다운 의식(儀式)과 충만한 감격의 찬송가를 여럿 발전시키고 있었다. 교회의 규모는 작았다. 그러나 이 교회는 유럽 전역에 걸쳐 섬세한 영적 영향력을 끼쳐 왔고, 다른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 교회에 가입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발전을 통해 그 정신이 유럽 기독교계를 깊게 한 동안 은은히 지도하고 있었다.[Williston Walker,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강근환·민경배·박대인·이영헌 편역, 『세계기독교회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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