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콘스탄티누스 대제”
오늘은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 c. 272–337)가 숨을 거둔 날입니다. 337년 5월 22일, 자신을 사도이자 감독으로 선포했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갈레리우스 황제의 궁에서 인질로 지내던 그는 아버지의 영토로 탈출하여 부친 콘스탄티우스의 뒤를 이어서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안(Milvian) 다리에서의 승리로 막센티우스의 세력을 장악했고, 323년에는 리시니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로마제국 전체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로마 최초의 기독교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시대에 비로소 성도들에 대한 박해가 종결되었습니다. 그가 반포한 밀라노칙령으로 몰수된 교회재산이 반환되었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의 회심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임종 직전에 아리우스파에 속한 유세비우스 감독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가 세례를 제때 받지 않은 것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4세기의 신앙관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 이후에 저지른 죄악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세례를 나중으로 미루었다. 임종 때 실시하는 세례는 유아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우리 구세주께서도 본보기로 세례를 받으셨던 곳(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마침내 337년 성령강림절 마지막 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유재덕,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서울: 브니엘, 2009), 91-92.]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대한 평가는 다양합니다. 권력에 밀착한 교회는 이전의 활력과 순교정신을 상실했습니다. 교역자들은 전문가 그룹이 되었고, 성도들은 수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콘스탄티누스로 인해 비로소 주님의 날이 휴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 의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들이 지금까지 주일을 안식하며 예배할 수 있는 배경에는 콘스탄티누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잡하고 혼합된 인물과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서도 일하십니다. 모략과 음모, 정치적 계산을 뛰어넘어 역사하십니다. 섭리하시는 주님 앞에 머리를 조아립시다.
황제는 기독교 때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그는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숭배를 통해, 그 상징이 태양이었던 지존의 존재에게 예배하고자 하였다……그리하여 그는 때에 따라 아폴로의 신탁을 구하기도 하고, 전통적으로 황제들에게 주어졌던 대사제(high priest)의 칭호를 받아들였으며, 자기에게 승리와 권력을 하사해 준 하나님을 포기하거나 배반한다는 생각도 없이 각종 이교 제전에 참여하곤 하였다. 그뿐 아니라 콘스탄틴은 교활한 정치가였다……만약 이교 숭배를 억제하고자 한다면 완강한 저항에 부딪칠 것을 잘 알고 있었다……황제의 칙령 하나로 이 모든 것들을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또한 정복되지 않는 태양과 성육하신 성자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모순을 발견할 수 없었던 황제 자신이 이러한 칙령을 내릴 의사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tianity, 서영일 역, 『초대교회사』 (서울: 은성, 2006), 1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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