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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5월 25일, 존 모트(John Raleigh Mott)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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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존 모트, 선교에 대한 재고찰”

오늘은 존 모트(John Raleigh Mott)가 태어난 날입니다. 1865년 5월 25일에 출생한 모트는 국제적 선교 동원가이자 에큐메니칼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아이오와 대학교와 코넬 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학생자원운동의 창립회원과 지도자, YMCA의 총무로 봉사했습니다. 모트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설립에 기여했으며, 194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모트는 기독 학생수련회에 참석한 후에야 비로소 이 운동에 개인적으로 헌신하게 되었다. 그 집회는 무디의 후원으로 메사츄세츠의 헐몬 산에서 열렸으며 나중에는 노스필드 근방의 수련회장에서 열렸다. 모트는 코넬 대학교의 대표로 참석했는데 그 회의에는 약 100개의 대학들에서 온 250명의 학생들이 무디와 저명한 성경학자들의 인도 아래 한 달간의 집회를 가졌다. 그 집회의 마지막 날, 프린스턴에서 온, 선교에 대해 열성적인 로버트 윌더(Robert Wilder)는 선교사로 헌신하자는 도전적인 제안을 하였으며 이는 개인적 결단으로 이끄는 강력한 호소가 되었다. 그 결과 나중에 “헐몬산의 백인”으로 알려진 100여 명의 학생들이 “프린스턴 서약”에 서명하였다. 프린스턴 서약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어느 곳이든 선교사로 가겠다”라는 것인데 곧 학생 자원 운동의 입회서약이 되었다. 모트는 100명 중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하였다. 그리고 이 모임은 후에 해외선교를 위한 학생자원운동으로 발전되었으며 모트는 30년 이상 이 모임을 이끌었다.[Ruth A. Tucker,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A Biographical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박해근 역, 『선교사 열전』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0), 353.]

모트는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선교에 대한 재고찰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선교 목적이 개종이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용인한 것입니다. 그의 선교관은 비판을 받았고, 선교에 대한 이런 입장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신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성경적 선교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복음사역에는 이러한 배타성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바른 교리를 전하는 선교사역을 위해서, 선교현장에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1910년 에딘버러에 제 1차 세계 선교 대회가 개최되었다……에딘버러 대회는 앞서 있던 모든 집회를 능가했다. 세밀한 준비성에 있어서 그랬으며……용의주도하고 과학적인 성찰을 했다는 집회의 성격에 있어서 그랬고……기독교회의 협조체제를 영속화시키기 위한 제조치들이 바로 이 대회에서 취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1200명이 넘는 대표들이 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참가하지 않았으며 각 대표들은 교회를 대표한 것이 아니라 선교회를 대표했으며 신생 교회들의 대표는 몇 명에 불과했다는 것 등이 눈에 띄는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는 기독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상적인 모임이었다. 이 대회의 의장은 미국감리교회의 평신도 존 롤리 모트였다. 그는 비록 한 번도 선교 일선에 나갔던 일은 없었으나 50년 동안 전체 프로테스탄트 선교 업무에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 세대 안으로 세계를 복음화하자”라는 슬로건과 관련되어 있다.[Stephen Neil,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홍치모·오만규 역, 『기독교 선교사』 (서울: 성광문화사, 1979),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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