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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7월 4일, 이성봉(李聖鳳)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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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이성봉,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오늘은 이성봉(李聖鳳)이 태어난 날입니다. 1900년 7월 4일, 평안남도 강동군 간리에서 출생한 이성봉은 어머니 김진실을 통해 기독교를 접했으나 회심의 체험 없이 건조한 교회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좌절 속에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정 경제가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할 수 없었던 이성봉은 돈벌이에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공허함 속에서 자살 결심을 하는 등 방황을 거듭하던 그는 육체의 질고(疾苦) 속에 쓰러지고 맙니다. 3년의 투병 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이성봉은 1925년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합니다. 그는 탁월한 부흥사로 쓰임 받으며 ‘한국의 무디’라 불렸는데, 미국, 일본, 만주에서도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성봉은 40여 년 동안 1,000회 이상의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또한 공산군 앞에서도 순교자의 정신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켰고, 전쟁 이후에는 “임마누엘 특공대”를 조직하여 교회를 재건하고 약소교회를 돕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는 새찬송가 181장 “부활 승천하신 주께서”의 작사가이기도 합니다. 이성봉 목사가 지은 또 다른 찬송시를 감상해 봅시다. 운율 속에 담긴 신앙고백이 절절합니다.

아침에는 예수로 눈을 뜨게 하시고 저녁에는 예수로 잠을 자게 하시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어요
[최현, 『한국 신앙의 거성』 (서울: 한국문서선교회, 2003), 99.]

저는 2005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림택권 총장의 설교를 듣던 중 “물을 떠난 고기가 혹 살 수 있을지 모르나 주님을 떠난 우리는 살 수 없다”는 말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때 많이 공감하며 울었고, 이 고백이 이성봉 목사의 것이라는 사실을 근간에 알게 되었습니다. 중학교도 나오지 못한 부흥사의 설교와 시에는 된장국 향이 납니다. 거기에는 학자의 논리와 지식보다는 고난 속에 체득한 성도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방앗간에서 방아 찧는 소리만 들으면 벌떡 일어나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는지 하늘을 살폈던 부흥사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겠습니까? 전국을 누비며 믿음과 회개를 외쳤던 이성봉 목사의 그 순전함이 내게 필요합니다.

어떤 술주정뱅이가 만취하여 기차 레일을 베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급행열차는 기적 소리를 내면서 달려오건만 그 술꾼은……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한 자비로운 사람이……“여보시오, 저기 기차가 옵니다. 속히 일어나시오” 하고 고함을 쳐도 그 자는 “기차는 무슨 기차, 우리 집 아랫목이야” 하면서 돌아눕습니다. 그 자비로운 사람이 보고 견딜 수 없어 달려 들어가 술주정뱅이 다리를 들어 철둑 아래로 내동댕이쳤습니다. 다행히 술주정뱅이는 데굴데굴 굴러갔으나 무정한 기차는……건지던 그 사람을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목이 잘라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팔이 잘라지고, 창자가 나와 즉사하였습니다……“아이고, 끔찍해라. 저 사람 왜 저렇게 되었소?” 하고 물으니, 옆 사람이 눈에서 불이 번쩍 나게 따귀를 후려갈겼습니다. “이 자식아! 이 사람은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레일을 베고 잠자던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그 사람은 이 글을 쓰는 저는 물론 온 세상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는 멸망을 알리는 기적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는데, 죄악의 술을 마시고 취생몽사(醉生夢死)로 허영의 꿈만 꾸는 것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자가 ……우리……대신에 죽으신 십자가의 대속을 말하는 것입니다.[이성봉, “십자가의 도”,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이성봉』 (서울: 홍성사, 2009), 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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