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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6년 7월 5일,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 1586-1647)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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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토마스 후커, 뉴잉글랜드의 루터”

오늘은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 1586-1647)가 태어난 날입니다. 1586년 7월 5일, 후커는 레스터셔의 마필드(Marefield)에서 출생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한 후커는 이매뉴얼 칼리지(Emmanuel College)의 요리문답 교사와 강사로 일하기 전 영적 고뇌 속에 회심을 체험합니다. 그가 청교도 회심신학의 꽃을 피운 사람으로 불리는 것은, 구속을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신자가 후커와 같은 방식으로 믿음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기 위한 영혼의 준비는 회복시켜야 할 복된 개념입니다.

이매뉴얼에 머무르는 동안 후커는 “종의 영”(롬8:15)에 사로잡힌 생각 때문에 극심한 가책을 받게 되었다. 그는 천국의 의로운 진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렇게 외쳤다. “내가 당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 받는 동안, 오! 주여, 나는 괴롭습니다!” 동료이자 후일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구성원이 된 시므온 애슈는 그를 구주에게로 인도하여 위로하려고 수일 밤을 보냈다. 후커는 성경의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다가 비로소 전적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회심의 경험에 대한 확신 속에서 그는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복음의 약속은 멸망하는 죄인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멸망하는 죄인들을 싣고 가는 선박과 같다.” 이 경험들은 그로 하여금 유사한 영적 투쟁을 겪게 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한결같이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었다.[Joel R. Beeke and Randall J. Pederson, Meet the Puritans: With A Guide to Modern Reprints, 이상웅‧이한상 역, 『청교도를 만나다』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550.]

후커는 목사와 저술가, 신학자와 정치가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기 때문에 “뉴잉글랜드의 루터”라고 일컬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와 북아메리카로 가기 전, 잉글랜드에서도 사역의 열매를 많이 맛보았습니다. 후커는 세인트 조지 교구 목사로 사역할 당시, 영적 낙담 속에 빠져 지내던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아내를 상담하며 도왔습니다. 그의 위로 속에서 그 여인은 절망과 의심을 걷어내고 회심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낙원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러한 교역자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양은 학자가 아닌 목자를 필요로 합니다.

제가 내리는 결론은 이와 같습니다……당신이 통회하며 순복함으로써 예수님께 적합한 사람이 되었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어디까지 이끌어 오셨고,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준비되었으며, 또 어떻게 죄가 우리 영혼으로부터 차단되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은 피조물 가운데 아무런 소망이 없고, 하늘 위에 어떤 구원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그리스도 안에 소망과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죄인은 주 예수님의 발 앞에 나아와 엎드리고, 자신이 전혀 딴 사람이 되었고 죄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기도나 다른 모든 방편들이 도움이 되지 않고, 그 방편들의 능력이 효과를 나타내지 않으며, 자신 안에 있는 부패함이 아직도 정복되지 않았음을 그 죄인이 깨닫게 되더라도, 그는 그리스도를 우러러보며 주께서 그에게 하고자 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것에 만족해합니다.[Thomas Hooker, The Poor Doubting Christian Drawn to Christ, 성정훈 역, 『그리스도께로 이끌린 사람들』 (서울: 지평서원, 2005),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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