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존 프레스톤, 기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모든 말들은 빈말에 불과합니다.”
오늘은 존 프레스톤(John Preston, 1587–1628)이 별세한 날입니다. 1628년 7월 20일,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프레스톤은 안식의 땅으로 처소를 옮겼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했고, 존 코튼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였습니다. 정치가이자 교사, 신학박사이자 퀸즈칼리지(Queens' College)의 학장이었던 프레스톤은 무엇보다 설교자로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봉사자로서 그가 전한 설교들은 사후에 편집되어 출판되었습니다. 프레스톤은 실천적 경건과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칼빈주의자였습니다. 기도에 대한 그의 권고를 들어봅시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는 만큼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자주 기도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최소한의 의무에 해당하는 정도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사랑한다거나 자신이 그분의 종이라고 하는 당신의 모든 말들은 빈말에 불과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분의 충성스런 종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사랑을 표현할 것입니다. 어떤 친구가 나를 잘 알고 내가 그를 기뻐한다면, 그는 나를 찾아올 것이며, 나 역시 그와 기꺼이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벗이요 그분이 우리의 벗이 되시며 우리가 그분을 기뻐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기도의 의무에 소홀할 수 있단 말입니까?[John Preston, The Saints’ Daily Exercise, 이광식 역, 『기도의 영성』 (서울: 지평서원, 2010), 38-39에서 재인용.]
프레스톤은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탁월한 학자였지만, 양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말씀의 꼴을 섭취해야 했습니다. 그는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여명을 의지해서 진리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과연 나는 자유로이 전깃불을 활용하면서 얼마만큼 연구에 힘을 쏟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최소 하루 2번의 기도를 권했던 프레스톤의 조언을 실천합시다. 편리함을 주신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는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곧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두신다면 사람의 마음은 끝없는 두려움의 구덩이 속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마치 태양이 사라지면 만물이 흑암에 휩싸이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참된 위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당한 정도와 분량으로부터 솟아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주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 임재가 제거될 때, 거기에는 두려움과 절망 외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여러분에게 어떠한 시련이 닥칠 때, 그 시련의 내적인 뿌리를 돌아보십시오. 그 원인이 되는 죄를 찾으십시오. 그러면 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죄가 직접적인 원인일 수도 있으며, 심판의 도구는 어떤 외적인 일, 원수들이나 질병 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분이 그러한 일들을 허락하시는 동기가 죄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동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와 은혜 외에 어떠한 동기도 없습니다.[John Preston, Golden Scepter Held Forth to the Humble, 홍상은 역, 『황금홀』 (서울: 지평서원, 2005), 363-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