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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2일, 부흥사 이성봉(李聖鳳, 1900-1965)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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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 “이성봉, 10원 남는 담배 배급 타려고 새벽에 나와서 그 야단인데……”

오늘은 이성봉(李聖鳳, 1900-1965)이 별세한 날입니다. 1965년 8월 2일, 이성봉은 “주의 은혜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지벽인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숨을 거두기 10일 전까지 설교했던 부흥사였습니다. 1939년에 성결교단 소속 부흥강사로 임명된 이성봉은 20여 년간 천개가 넘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성결교회 재건에 앞장섰고, 한국전쟁 당시 서울수복 이후부터는 ‘임마누엘 특공대’라는 전도단을 이끌고 각처에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무엇보다 이성봉은 건전한 복음주의자였습니다. 그가 라디오방송을 통해 전했던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강화 중 일부를 살펴봅시다.

6.25때 보니까 무던히도 살려고 애씁디다. 집도 내버리고 부모처자도 내버리고 여리 장롱도 내버리고……그저 자기만 살겠다고 달아나는데 무던히 살려고 그래요. 무엇이 영생이 있는 증거요 욕망이 있으면 대상이 있어. 식욕이 있으면 밥이 있고. 색욕이 있으면 이성이 있지요. 사람에게는 살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이 있으매 인생의 대상이 있는 것이랍니다. 이 생명을 잠깐 있는 이 육적 생명을 위해 애를 쓰는 사람 많지만 영원한 생명을 위하야 애쓰는 사람 많지 않소. 나는 새벽기도 가다가 담배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둘러싸고 야단하고 있는지 ‘저기 뭘 하느냐’고 그러니까 담배 배급 타러 왔다고, 그거 얼마나 남느냐고 그러니까 한 갑에 10원 남는다고. 10원 남는 담배 배급 타려고 새벽에 나와서 그 야단인데 하나님의 말씀 귀한 생명의 진리의 배급을 타러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 너무도 적은 걸 생각할 때에 맘에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정인교 엮음, 『이성봉 부흥 설교의 진수: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서울: 한들출판사, 2003), 136.]

이성봉은 중학교 졸업장이 없어 신학교가 아닌 성서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의 설교를 읽으면 음성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이성봉의 설교는 독자에게 말을 걸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빨치산이 천국을 보았느냐고 다그칠 때도, 천국 본점은 못 보았지만 천국 지점은 내 마음 속에 있다고 대답한 그는 설교한 대로 살았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나의 신학이 신앙과 발맞추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만주……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이때에 모친의 병환이 위급하다는 급보가 왔습니다. 저는……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잠시 당황했었습니다……이런 난경(難境)에서 기도를 하는데, 제게 문득 “네가 만일 나라를 위하여 출전하여 일선에서 싸운다면 이 전보를 받고 갈 수 있겠는가?”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나는 그리스도의 정병이니 사사로운 일에 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집회를 계속하였는데, 또다시 전보가 왔기에 송구한 마음으로 떼어 보니 어머니께서 그만 세상을 떠나셨다는 비보였습니다. 남은 집회를 마치고……황급히 집에 도착하니 벌써 삼일 전에 장례를 지낸 뒤였습니다……울적한 마음을 비할 길이 없어서 어머니께서 평소에 읽으시던 성경 갈라디아서를 이리저리 뒤져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친필로 적은 노래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하늘나라 우리 집 보석성의 내 집은 영원무궁하도록 낡아짐이 없도다”……자, 이제 우리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말고 전심으로 주를 따라갑시다.[KIATS 엮음,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이성봉』 (서울: 홍성사, 2009), 6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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