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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고백자 막시무스, 칼케돈주의자”
오늘은 고백자 막시무스(Maximus the Confessor, c. 580–662)가 별세한 날입니다. 662년 8월 13일, 막시무스는 심한 고문을 당한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막시무스는 단일의지론(Monothelitism)을 반대하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혀가 잘렸고,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의지만이 존재한다는 타협안에 서명을 거절했기 때문에 오른손이 잘렸습니다.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 451)의 결정을 따랐던 막시무스는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과 두 의지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막시무스는 이로 인해 황제로부터 검거되어 추방당했으나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칼케돈주의자들과 단성론자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또 다른 시도는……비참하게 끝을 맺게 되었다. 624년 동방의 황제는 문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단성론자들과 협의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제안하면서 두 본성은 항상 조화롭게 작용한다고 하였다……그리스도 안에는 두 본성이 있지만 오직 하나만이 활동(operation 또는 activity)한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에게 전해졌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로마에 있는 교황 호노리우스 1세(Honorius Ⅰ)에게도 보내졌으며 그 또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황은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있지만 오직 하나의 의지(will)만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는데,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황제와 총대주교는 이것을 문제의 해결로 여겼다. 638년 황제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하나의 의지로 통합되었다는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는 더 이상 ‘활동들’(operations 또는 activities)이라는 복수적인 언급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일의지론의 시작이었다.[David, N. Bell, Many Mansions, 이은재 역, 『중세교회 신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2), 51.]
단일의지론은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두 의지는 정죄된 네스토리우스주의를 생각나게 했을 것입니다. 이런 논쟁이 무익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단일의지론은 성경적 교훈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간적 의지를 지니셨던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막시무스는 신약성경을 통해 설득되었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논쟁 속에서 한동안 ‘텔레마’(의지)라는 용어보다 ‘에네르게이아’(힘)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었지만, 좀 더 명확한 용어였던 전자가 곧 보편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의지”라는 단어가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이 단어는 흔히 본능들, 욕망들, 애착들과 그 반대의 것들을 포함하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고대의 논쟁 속에서 “의지”라는 용어는 이 모든 것들을 다 포괄하였기 때문에, 이 논쟁이 던진 질문 속에는, 그리스도가 두려워할 수 있었고 고난과 죽음을 겁내어 피하고자 했을 수 있는지를 묻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인간적 의지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그의 인성에 어느 정도 가현설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Louis Berkhof, Th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s, 박문재 역, 『기독교 교리사』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8), 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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