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자가 드리는 기도들
20세기 후반 영미권을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기도서. 평생을 그리스도교 복음과 현실을 연결하는 작업을 과제로 삼아 온 신학자의 고투,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갖게 되는 고민과 성찰,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평이한 언어로 기도에 녹아냈다.
듀크 대학교 교수 시절 수업을 시작하며 드린 기도들을 모아놓은 이 기도 모음집에는 이야기 신학, 성품 및 덕의 윤리, 그리스도교 평화주의, 자유주의 비판 등 그의 신학의 주요 관심사와 알맹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신학'이 '기도'를 빚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신학’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자 종점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러한 내용을 평이한 언어로 담아내려 애썼다.
신학 수업에 앞서 때로는 강의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했던 기도문은, 다른 무엇보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엎드리는 신앙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 기도서를 읽으며, 이 기도서와 함께 기도하며 신학적 성찰을 일상적이고 평범한 언어에 녹아내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정답 없는 삶 속에서 드리는 기도들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기도서
"신학이란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분과 함께, 그분을 향해, 그분에 관해 말하는 법을 익히는 끝없는 훈련입니다. 기도란 모든 말 중의 말, 그 모든 말의 결정체 같은 것입니다. 모든 신학은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니 이 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제 신학 작업을 검증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스텐리 하우워어스라는 사람의 신학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아니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서를 읽기 위해, (제 바람대로) 이 기도서로 기도하기 위해 제 ‘신학적 입장’이 어떠한지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그분을 예배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열망을 갖고 있는 이라면 누구든 이 기도서에 담긴 기도들로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문 중)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듀크 대학교 교수 재임 시절 드린 기도들을 모은 기도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타임지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라는 평가를 내린 적도 있을 만큼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다. 평생을 그리스도교 복음과 현실을 연결하는 작업을 과제로 삼아 온 그는 이른바 주류 그리스도교가 간과해 온 복음의 근본적인 '다름'을 발견하고 이를 전례와 실천을 통해 구현하는 교회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역설해 왔다.
이 기도 모음집에는 이야기 신학, 성품 및 덕의 윤리, 그리스도교 평화주의, 자유주의 비판 등 그의 신학의 주요 관심사와 알맹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신학'이 '기도'를 빚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신학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자 종점이라는 것을, 기도란 반드시 '신학적 지식'을 갖추어야 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님을, 이 땅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해 주님이 당신의 뜻을 드러내셨다고 믿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도서에 실린 기도들은 신학자의 고민이 녹아들어있되 누구나 어디에서 발판 삼아 읽을 정도로 평범하고, 평이하다.
독자들은 이 '기도서'를 읽으며 신학적인 동시에 체험적인, 그러면서도 공적인 윤리에 대한 책임을 아우르는 신학적 반성이 어떻게 일상적이고 평범한 언어에 녹아들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감사'와 '찬미'라는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목적에 신학이 봉사할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삶 또한 하나의 기도로 빚어가기 위해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단단하고 투명한 거울과도 같은 기도서다.
20세기 후반 영미권을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기도서. 평생을 그리스도교 복음과 현실을 연결하는 작업을 과제로 삼아 온 신학자의 고투,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갖게 되는 고민과 성찰,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평이한 언어로 기도에 녹아냈다.
듀크 대학교 교수 시절 수업을 시작하며 드린 기도들을 모아놓은 이 기도 모음집에는 이야기 신학, 성품 및 덕의 윤리, 그리스도교 평화주의, 자유주의 비판 등 그의 신학의 주요 관심사와 알맹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신학'이 '기도'를 빚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신학’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자 종점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러한 내용을 평이한 언어로 담아내려 애썼다.
신학 수업에 앞서 때로는 강의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했던 기도문은, 다른 무엇보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엎드리는 신앙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 기도서를 읽으며, 이 기도서와 함께 기도하며 신학적 성찰을 일상적이고 평범한 언어에 녹아내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정답 없는 삶 속에서 드리는 기도들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기도서
"신학이란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분과 함께, 그분을 향해, 그분에 관해 말하는 법을 익히는 끝없는 훈련입니다. 기도란 모든 말 중의 말, 그 모든 말의 결정체 같은 것입니다. 모든 신학은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니 이 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제 신학 작업을 검증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스텐리 하우워어스라는 사람의 신학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아니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서를 읽기 위해, (제 바람대로) 이 기도서로 기도하기 위해 제 ‘신학적 입장’이 어떠한지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그분을 예배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열망을 갖고 있는 이라면 누구든 이 기도서에 담긴 기도들로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문 중)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듀크 대학교 교수 재임 시절 드린 기도들을 모은 기도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타임지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라는 평가를 내린 적도 있을 만큼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다. 평생을 그리스도교 복음과 현실을 연결하는 작업을 과제로 삼아 온 그는 이른바 주류 그리스도교가 간과해 온 복음의 근본적인 '다름'을 발견하고 이를 전례와 실천을 통해 구현하는 교회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역설해 왔다.
이 기도 모음집에는 이야기 신학, 성품 및 덕의 윤리, 그리스도교 평화주의, 자유주의 비판 등 그의 신학의 주요 관심사와 알맹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신학'이 '기도'를 빚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신학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자 종점이라는 것을, 기도란 반드시 '신학적 지식'을 갖추어야 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님을, 이 땅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해 주님이 당신의 뜻을 드러내셨다고 믿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도서에 실린 기도들은 신학자의 고민이 녹아들어있되 누구나 어디에서 발판 삼아 읽을 정도로 평범하고, 평이하다.
독자들은 이 '기도서'를 읽으며 신학적인 동시에 체험적인, 그러면서도 공적인 윤리에 대한 책임을 아우르는 신학적 반성이 어떻게 일상적이고 평범한 언어에 녹아들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감사'와 '찬미'라는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목적에 신학이 봉사할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삶 또한 하나의 기도로 빚어가기 위해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단단하고 투명한 거울과도 같은 기도서다.
제게 ‘그 자리에서 곧바로, 떠오르는 대로’ 기도를 드릴수 있는 깊이가 없음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침마다 시간을 내 기도문을 적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면서
도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제게 기도를 적어 놓은 노트를 달라고 하기 시작했습니
다. 저는 학생들의 요청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 저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싶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 또한 저라는 사람을 의식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도란 기도의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그분’을 향해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드린 기도에 담긴 무언가가 몇몇 학생들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음 또한 분명했습니다. 급기야 학생들은 기도들을 책으로 출판해달라고 건의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기도서’를 낸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던 것은 기도한다는 것 자체에 관해 늘 갖고 있던 문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경건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문제 말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저를 경건한 사람으로 여길까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는 경건하지 않으니까요. 적어도 저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곤 하는 그런 모습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입니
다. 경배해 마땅한 이, 경배해야 마땅한 것에게 그에 맞는 경배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위해 ‘거룩’해지
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거룩함’을 경계했습니다. 오늘날 ‘거룩함’holiness이란 너무나 자주 종교적인 주장이 참된 길을 벗어났을 때 드러나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기도자가 기도 시 으레 하는 말을 하며 경건
한 기도 톤에 ‘빠지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좋은 마음을 먹고 집중하려 애써도 우리 마음은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습니다. 그처럼 ‘거룩’ 공식에 들어맞는 기도가 듣기 힘든 이유는 아마 그러한 기도에서는 기도하는 이의 외적 태도만이 도드라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에서 기도의 ‘내용’에 집중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기도 자체보다는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중시하게 됩니다. 이때 기도는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욕구를 확인하는 종교적인 감정의 토로가 되고 맙니다. 몇몇 학생이 이 기도들을 다시 읽고 싶어 했던 이유도 이 기도들이 ‘거룩’하지 않다는 데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이 기도들은 꾸밈없이 평범합니다. 제 기도가 평범한 이유는 제가 평소에 하는 말과 동떨어진 기도를 드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도하며 평소 저와 다른 정체성을 갖지 않으려 했습니다.---p.17~18.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사람의 신학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아니 이 책을 읽는 독자 대
부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기도서를 읽기 위해, (제 바람대로) 이 기도서로 기도하기 위해 제 ‘신학적 입장’이 어떠한지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그분을 예배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열망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이 기도서에 담긴 기도들로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기도서를 읽은 누군가가 제가 쓴 다른 책들까지 읽게 된다 해서 제가 그 일을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실린 기도들을 이해하기 위해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바, 저의 신학을 꼭 알아
야 한다면 이 기도들은 기도로서의 가치가 없겠지요. 이 기도들은 대부분 대학원 수업을 시작하면서 드리기 위해 기록한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문적인’ 기도는 아닙니다. 물론 이 기도들은 그리스도교 윤리학 수업을 열면서 드리는 기도였으므로 종종 그날 수업 시간에 할 내용과 관련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은 교회의 전례를 따라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수나 신학생들만 갖고 있는 관심사에 한정된, 특정한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교실 안이든 밖이든 우리 삶에는 모두 시작과 끝이 있으며 우리는 그 사이를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습니다.---p.22
은총이 가득하신 주님,
기도라는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께 기도드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요.
당신 앞에 우리가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걱정을 풀어 놓고,
비통과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기도하기가 버겁습니다.
기도하는 중에도 계속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뭐라고 기도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 물음이 거짓 겸손이라는 것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은 제가 저 자신의 주인이 되려는
교만한 욕망을 숨기려는 질문일 뿐입니다.
이제 순전한 기쁨으로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하사,
당신의 기도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p.34~5.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주님,
당신 안에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셔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소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죽음 역시 죽었으니
그분이 부활하셨듯
우리 또한 생명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그 생명이 온전케 됨을 압니다.
우리의 삶을 당신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p.194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침마다 시간을 내 기도문을 적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면서
도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제게 기도를 적어 놓은 노트를 달라고 하기 시작했습니
다. 저는 학생들의 요청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 저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싶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 또한 저라는 사람을 의식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도란 기도의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그분’을 향해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드린 기도에 담긴 무언가가 몇몇 학생들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음 또한 분명했습니다. 급기야 학생들은 기도들을 책으로 출판해달라고 건의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기도서’를 낸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던 것은 기도한다는 것 자체에 관해 늘 갖고 있던 문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경건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문제 말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저를 경건한 사람으로 여길까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는 경건하지 않으니까요. 적어도 저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곤 하는 그런 모습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입니
다. 경배해 마땅한 이, 경배해야 마땅한 것에게 그에 맞는 경배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위해 ‘거룩’해지
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거룩함’을 경계했습니다. 오늘날 ‘거룩함’holiness이란 너무나 자주 종교적인 주장이 참된 길을 벗어났을 때 드러나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기도자가 기도 시 으레 하는 말을 하며 경건
한 기도 톤에 ‘빠지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좋은 마음을 먹고 집중하려 애써도 우리 마음은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습니다. 그처럼 ‘거룩’ 공식에 들어맞는 기도가 듣기 힘든 이유는 아마 그러한 기도에서는 기도하는 이의 외적 태도만이 도드라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에서 기도의 ‘내용’에 집중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기도 자체보다는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중시하게 됩니다. 이때 기도는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욕구를 확인하는 종교적인 감정의 토로가 되고 맙니다. 몇몇 학생이 이 기도들을 다시 읽고 싶어 했던 이유도 이 기도들이 ‘거룩’하지 않다는 데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이 기도들은 꾸밈없이 평범합니다. 제 기도가 평범한 이유는 제가 평소에 하는 말과 동떨어진 기도를 드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도하며 평소 저와 다른 정체성을 갖지 않으려 했습니다.---p.17~18.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사람의 신학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아니 이 책을 읽는 독자 대
부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기도서를 읽기 위해, (제 바람대로) 이 기도서로 기도하기 위해 제 ‘신학적 입장’이 어떠한지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그분을 예배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열망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이 기도서에 담긴 기도들로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기도서를 읽은 누군가가 제가 쓴 다른 책들까지 읽게 된다 해서 제가 그 일을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실린 기도들을 이해하기 위해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바, 저의 신학을 꼭 알아
야 한다면 이 기도들은 기도로서의 가치가 없겠지요. 이 기도들은 대부분 대학원 수업을 시작하면서 드리기 위해 기록한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문적인’ 기도는 아닙니다. 물론 이 기도들은 그리스도교 윤리학 수업을 열면서 드리는 기도였으므로 종종 그날 수업 시간에 할 내용과 관련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은 교회의 전례를 따라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수나 신학생들만 갖고 있는 관심사에 한정된, 특정한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교실 안이든 밖이든 우리 삶에는 모두 시작과 끝이 있으며 우리는 그 사이를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습니다.---p.22
은총이 가득하신 주님,
기도라는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께 기도드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요.
당신 앞에 우리가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걱정을 풀어 놓고,
비통과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기도하기가 버겁습니다.
기도하는 중에도 계속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뭐라고 기도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 물음이 거짓 겸손이라는 것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은 제가 저 자신의 주인이 되려는
교만한 욕망을 숨기려는 질문일 뿐입니다.
이제 순전한 기쁨으로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하사,
당신의 기도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p.34~5.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주님,
당신 안에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셔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소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죽음 역시 죽었으니
그분이 부활하셨듯
우리 또한 생명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그 생명이 온전케 됨을 압니다.
우리의 삶을 당신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p.194
감사의 말 / 11
서문 / 13
기도들의 성격에 관하여 / 19
조엘을 위한 기도 / 26
시작
거듭나게 하사 두려움이 없게 하소서 / 30
살아있게 하소서 / 32
내가 드리는 기도에 관하여 / 34
간청을 가르쳐 주소서 / 36
살인적인 문명에 관한 기도 / 38
둔감함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 40
그분을 닮아가게 하소서 / 42
한 평범하지만 아름다웠던 삶을 기억하며 / 44
가면을 벗는 삶 / 46
어린아이의 눈을 주소서 / 48
시간의 창조주께 / 50
바다와도 같은 삶에서 당신의 뜻을 헤아리기를 간구하며 / 52
수업을 시작하며 드리는 기도 / 55
시작과 끝 사이에서
진실하게 하소서 / 59
동료 피조물들의 존재에 감사하며 / 62
찬미라는 선한 일 / 64
질투하시는 주님께 드리는 기도 / 66
어리석은 세상을 위한 기도 / 68
은총의 침략을 간구하며 / 70
‘궁극적 모호함’이 아닌 주님께 / 72
‘자기’에서 벗어나기를 / 74
참된 다스림을 구하는 기도 / 76
진정한 시간을 간구하는 기도 / 78
경이로운 삶을 찬미하며 / 80
당신의 평화에 합당한 우리가 되기를 / 82
‘우리의’ 신학을 돌아보며 / 83
사귐을 구하는 기도 / 84
우리를 뒤흔들어 주심에 감사를 / 85
평화를 구하는 기도 / 86
당신의 임재를 찬미하며 / 87
미덕을 구하는 기도 / 88
진정한 삶을 간구하며 / 89
우리의 본성을 깨우쳐 주소서 / 91
실로 기쁜 일 / 92
지나간 세대를 위한 기도 / 93
죄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 94
패배한 적들을 위한 기도 / 96
우리는 신실한 척합니다 / 97
주제넘은 마음을 용서해주소서 / 98
말씀에 집중하게 하소서 / 99
단순함을 구하는 기도 / 100
아이처럼 / 101
힘의 남용을 경계하며 / 102
헛된 야망에서 벗어나기를 / 104
강건한 나라로 이끌게 하소서 / 106
선거일을 맞이하여 / 107
주님의 환대를 구하는 기도 / 108
확실함이 아니라 기쁨을 / 110
헌신하게 하소서 / 112
거짓을 드러내는 진리 / 114
아이들을 위한 기도 / 115
주여, 우리는 당신의 평화를 두려워 합니다 / 117
전쟁과 죽음으로 가득 찬 세상을 위한 기도 / 118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드리는 기도 / 120
우정이 번창하는 공동체를 간구하며 / 122
사랑을 찬미함 / 124
참된 소망을 구하는 기도 / 126
유대인을 위한 기도 / 128
일상을 돌이켜보며 드리는 기도 / 130
예수 따르기를 간구하며 / 132
삶의 조각들을 모아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 / 134
홀로에서 벗어나 함께 하기를 간구하는 기도 / 136
성인들을 보내주심에 감사드리며 / 138
원수에 관한 기도 / 140
기꺼이 미움을 감내하는 용기를 구하며 / 142
감사드릴 수 있음에 감사를 / 144
말다운 말을 할 수 있기를 갈망하며 / 146
기상천외하신 주님을 찬미하며 / 148
배고플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 150
당신의 나라를 이루는 조각이 되기를 / 152
진리를 갈망하며 / 154
올바른 분노를 구하는 기도 / 156
허리케인의 여파 속에서 / 158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 / 162
기억과 고통 / 164
미국인으로서 드리는 기도 / 166
일상의 순간들을 찬미하며 / 168
기억을 간구하는 기도 / 170
너무나 다르고, 너무나 가까우신 주님께 / 172
끝
죽음을 마주하며 / 176
죽음의 나라에 맞서기를 기도하며 / 178
진부한 말에 생명을 / 179
몸이 되신 주님을 찬미하며 / 181
은총의 리듬으로 뛰는 심장 / 182
두 성인을 기억하며 / 184
헨리 나우웬의 죽음 앞에서 / 186
궁극적 상황에 처한 상황윤리학자를 위해 드리는 기도 / 188
고양이 터크의 죽음을 기리며 / 190
한 비극적인 죽음을 기리며 / 192
삶이라는 선물 / 194
예기치 못한 인연에 감사를 / 196
수업을 마치며 / 198
기도를 마무리하며 / 199
옮긴이의 말 / 201
서문 / 13
기도들의 성격에 관하여 / 19
조엘을 위한 기도 / 26
시작
거듭나게 하사 두려움이 없게 하소서 / 30
살아있게 하소서 / 32
내가 드리는 기도에 관하여 / 34
간청을 가르쳐 주소서 / 36
살인적인 문명에 관한 기도 / 38
둔감함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 40
그분을 닮아가게 하소서 / 42
한 평범하지만 아름다웠던 삶을 기억하며 / 44
가면을 벗는 삶 / 46
어린아이의 눈을 주소서 / 48
시간의 창조주께 / 50
바다와도 같은 삶에서 당신의 뜻을 헤아리기를 간구하며 / 52
수업을 시작하며 드리는 기도 / 55
시작과 끝 사이에서
진실하게 하소서 / 59
동료 피조물들의 존재에 감사하며 / 62
찬미라는 선한 일 / 64
질투하시는 주님께 드리는 기도 / 66
어리석은 세상을 위한 기도 / 68
은총의 침략을 간구하며 / 70
‘궁극적 모호함’이 아닌 주님께 / 72
‘자기’에서 벗어나기를 / 74
참된 다스림을 구하는 기도 / 76
진정한 시간을 간구하는 기도 / 78
경이로운 삶을 찬미하며 / 80
당신의 평화에 합당한 우리가 되기를 / 82
‘우리의’ 신학을 돌아보며 / 83
사귐을 구하는 기도 / 84
우리를 뒤흔들어 주심에 감사를 / 85
평화를 구하는 기도 / 86
당신의 임재를 찬미하며 / 87
미덕을 구하는 기도 / 88
진정한 삶을 간구하며 / 89
우리의 본성을 깨우쳐 주소서 / 91
실로 기쁜 일 / 92
지나간 세대를 위한 기도 / 93
죄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 94
패배한 적들을 위한 기도 / 96
우리는 신실한 척합니다 / 97
주제넘은 마음을 용서해주소서 / 98
말씀에 집중하게 하소서 / 99
단순함을 구하는 기도 / 100
아이처럼 / 101
힘의 남용을 경계하며 / 102
헛된 야망에서 벗어나기를 / 104
강건한 나라로 이끌게 하소서 / 106
선거일을 맞이하여 / 107
주님의 환대를 구하는 기도 / 108
확실함이 아니라 기쁨을 / 110
헌신하게 하소서 / 112
거짓을 드러내는 진리 / 114
아이들을 위한 기도 / 115
주여, 우리는 당신의 평화를 두려워 합니다 / 117
전쟁과 죽음으로 가득 찬 세상을 위한 기도 / 118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드리는 기도 / 120
우정이 번창하는 공동체를 간구하며 / 122
사랑을 찬미함 / 124
참된 소망을 구하는 기도 / 126
유대인을 위한 기도 / 128
일상을 돌이켜보며 드리는 기도 / 130
예수 따르기를 간구하며 / 132
삶의 조각들을 모아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 / 134
홀로에서 벗어나 함께 하기를 간구하는 기도 / 136
성인들을 보내주심에 감사드리며 / 138
원수에 관한 기도 / 140
기꺼이 미움을 감내하는 용기를 구하며 / 142
감사드릴 수 있음에 감사를 / 144
말다운 말을 할 수 있기를 갈망하며 / 146
기상천외하신 주님을 찬미하며 / 148
배고플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 150
당신의 나라를 이루는 조각이 되기를 / 152
진리를 갈망하며 / 154
올바른 분노를 구하는 기도 / 156
허리케인의 여파 속에서 / 158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 / 162
기억과 고통 / 164
미국인으로서 드리는 기도 / 166
일상의 순간들을 찬미하며 / 168
기억을 간구하는 기도 / 170
너무나 다르고, 너무나 가까우신 주님께 / 172
끝
죽음을 마주하며 / 176
죽음의 나라에 맞서기를 기도하며 / 178
진부한 말에 생명을 / 179
몸이 되신 주님을 찬미하며 / 181
은총의 리듬으로 뛰는 심장 / 182
두 성인을 기억하며 / 184
헨리 나우웬의 죽음 앞에서 / 186
궁극적 상황에 처한 상황윤리학자를 위해 드리는 기도 / 188
고양이 터크의 죽음을 기리며 / 190
한 비극적인 죽음을 기리며 / 192
삶이라는 선물 / 194
예기치 못한 인연에 감사를 / 196
수업을 마치며 / 198
기도를 마무리하며 / 199
옮긴이의 말 / 201
스탠리 하우어워스
Stanley Hauerwas
1940년생.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사우스웨스턴 대학교를 거쳐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아우구스타나 대학, 노트르담 대학교를 거쳐 2013년 은퇴할 때까지 듀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2001년 기포드 강연을 맡았으며 에든버러 대학교를 포함한 다수의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DD학위를 받았다. 「타임」Time magazine에서는 그를 두고 “미국 최고의 신학자”라고 평했으며 그의 저작인 『평화의 나라』The Peaceable Kingdom는 「더 처치 타임즈」The Church Times가 선정한 최고의 그리스도교 저작 100선에, 『교회됨』A Community of Character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가 선정한 20세기 그리스도교 관련 100대 명저에 꼽혔다. 현재 듀크 대학교 신학부 및 법학부의 길버트 로우 명예 교수로 강연과 집필을 이어가고 있으며 성공회 평신도로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의 캐넌 신학자로도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 『교회됨』(1981, 북코리아), 『평화의 나라』(1983), 윌리엄 윌리몬William Willimon과 함께 쓴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Resident Aliens(1989, 복 있는 사람), 『침묵에 이름 붙이기』Naming the Silence(1990), 『우주의 결을 따라』With the Grain of the Universe(2001), 『한나의 아이』Hannah’s Child(2010, IVP), 『십자가 위의 예수』Cross-Shattered Christ(2011, 새물결플러스) 등이 있다.
1940년생.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사우스웨스턴 대학교를 거쳐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아우구스타나 대학, 노트르담 대학교를 거쳐 2013년 은퇴할 때까지 듀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2001년 기포드 강연을 맡았으며 에든버러 대학교를 포함한 다수의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DD학위를 받았다. 「타임」Time magazine에서는 그를 두고 “미국 최고의 신학자”라고 평했으며 그의 저작인 『평화의 나라』The Peaceable Kingdom는 「더 처치 타임즈」The Church Times가 선정한 최고의 그리스도교 저작 100선에, 『교회됨』A Community of Character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가 선정한 20세기 그리스도교 관련 100대 명저에 꼽혔다. 현재 듀크 대학교 신학부 및 법학부의 길버트 로우 명예 교수로 강연과 집필을 이어가고 있으며 성공회 평신도로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의 캐넌 신학자로도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 『교회됨』(1981, 북코리아), 『평화의 나라』(1983), 윌리엄 윌리몬William Willimon과 함께 쓴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Resident Aliens(1989, 복 있는 사람), 『침묵에 이름 붙이기』Naming the Silence(1990), 『우주의 결을 따라』With the Grain of the Universe(2001), 『한나의 아이』Hannah’s Child(2010, IVP), 『십자가 위의 예수』Cross-Shattered Christ(2011, 새물결플러스) 등이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