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에베소서 1:18)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도의 제목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아는 것은 최고의 복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의 기도는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간구의 내용은 이미 성도에게 주신 영적인 복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복을 파악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의 눈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에베소서 4:18)
에베소서 4장 18절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사람, 즉 거듭나지 못한 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총명이 어두운 것”과 “무지”입니다. 이것은 본문이 말하고 있는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와 정반대의 이야기 아닙니까?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마음 눈을 밝히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회개의 마음을 주시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은 안구 수술을 할 때, 먼저 혼탁한 것을 긁어내는 것과 유사합니다. 두 번째로는, 생명의 원리가 주입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새 창조”, 혹은 “두 번째 창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자연히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 역시 안과 수술과 비슷합니다. 혼탁한 것만 제거해서는 안 됩니다. 시신경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인공수정체와 같은 것들이 삽입되어야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신자에게 생명을 공급하십시다. 그리하여 신자는, 새로워진 영적 시력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신자는 밝히 뜬 눈으로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과 교제할 수 되었습니다. 전에는 영적으로 소경되어서 어둠 속을 헤매던 죄인이, 이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변화되어, 빛의 자녀로 살며, 광명 속에서 주님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더 많이 알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눈을 밝히십니다. 주님은 죄를 제거하시고, 생명을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빛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빛이 없으면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도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십시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조명”(Illumina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아멘으로 화답하고, 성경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조명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놀라는 것 역시 그분의 조명 까닭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 눈은 이러한 원리로 밝혀집니다. 앞 못 보는 죄인의 눈을 뜨게 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찬양하십시오. 밝히 뜬 그 분으로 예수님을 응시하고 최고의 사랑을 드리십시오. 당신의 마음 눈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