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31
"I in them" (John 17: 23).
If such is the union which subsists between our souls and the person of our Lord, how deep and broad is the channel of our communion! This is no narrow pipe through which a thread-like stream may wind its way. It is a channel of amazing depth and breadth along whose glorious length a ponderous volume of living water may roll. This city of communion has many pearly gates. Each gate is thrown wide open, that we may enter assured of welcome. How much we are blessed in having so large an entrance! Had the Lord Jesus been far away from us, with many a stormy sea between, we would have longed to send a messenger to tell Him of our love and bring us tidings from His Father's house. See His kindness. He takes lodging with us and tabernacles in poor humble hearts. How foolish we are if we do not live in habitual communion with Him! When the road is long, dangerous, and difficult, we need not wonder that friends seldom meet each other. But when they live together, will Jonathan forget his David? A wife may, when her husband is on a journey, live many days without holding a conversation with him, but she could never be separated from him if she knew he was in one of the rooms of her own house. Seek your Lord for He is near. Embrace Him for He is your Brother. Hold Him fast for He is your Husband. Press Him to your heart for He is of your own flesh.
7월 31일
제목 : 내가 저희 안에
요절 :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함이로소이다.(요17:23)
만일 우리의 영혼과 우리 주님의 인격사이의 결합이 이런 것(요17:23)이라면 우리의 친교의 길은 얼마나 깊고 넓을까요! 주님과 우리와의 교제의 통로는 실같은 개천이 굽이치며 흐르는 것같은 그런 좁은 파이프(관)가 아닙니다. 그것은 굉장한 길이의 통로를 따라서 엄청난 생수의 양이 굽이쳐 흐르는, 놀라운 깊이와 넓이의 수로(水路)입니다. 그리고 이 친교의 도성엔 진주로 장식된 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각 문은 우리가 환영을 확신하면서 들어가도록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토록 넓은(큰) 천국의 현관(입구)을 가졌으니(열려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복됩니까!
만일 주 예수님이 사나운 거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와 아주 먼 곳에 계신다면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사랑을 전(말씀을)하고 또 하나님 아버지의 집의 소식(기별)을 가져올 전달 자(메신저)를 보내 달라고 간절히 소원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자함을 보십시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숙박하고 있습니다. 즉 빈천(貧賤)한 (가난하고 비천한) 우리의 마음을 성전(성막)으로 삼고 계십니다.(역자주1)
그런데 우리가 만일 주님과 늘 동거의 교제 속에서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가서 만날 그 길이 멀고, 위험하고, 어렵다면 친구들이 서로 드믈게 만난다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그렇지만 함께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면 무언가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살 때 요나단이 다윗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아내가 그의 남편이 여행중에 있을 때에는 그 남편과 대화를 계속하지 못한 채 여러 날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내가 그 남편이 그 여인의 집의 방들 중 하나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여인은 그 남편과 절대로 떨어져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까이 계시는 그대의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대의 형님인 주님을 포옹하십시오. 그대의 남편이신 주님을 꽉 붙잡으십시오. 그대 자신의 몸이신 주님을 그대의 가슴에 바짝 안으십시오,
주1 고전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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