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 함께 사라지는 쾌락
우리는 결국 세상의 영광 가운데서는 사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항해하는 배처럼 끊임없이 움직여 어느 날 영원의 해안에 다다라야 합니다. 비록 세상의 영광은 실재하며 우리의 무덤까지 따라가지만 그 이상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던 하드리안 황제는 절망 가운데 죽었습니다. 세네카는 말합니다. “당신이 진정 행복한 사람인지 여부는 당신의 마지막 날이 밝혀줄 것이다.” 죽음의 시간에 세상은 헛된 모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땅으로 벌거벗은 채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들에 우리 눈과 마음을 고정시키는 영혼이 얼마나 어리석고 제 정신이 아닌지 보십시오. 시편 기자는 그것을 “뜻을 허탄한 데 두며”(시24:4)라고 표현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다 고백하면서도 베드로처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마24:4)라고 말하면서 세상과 세상이 주는 어리석은 이득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요. 만일 세상이 이 땅의 헛됨을 당신에게 알려 주지 못한다면 사망이 가르쳐 줄 것입니다. 숨 쉬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수놓은 옷, 금, 직책 등을 제공해 보십시오. 선물을 멸시하며 “나는 이제 이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것을 알았소.”하고 말할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친구들이 슬피 울고, 의사들은 포기하며, 하나님이 얼굴을 찡그리시고, 감각이 사라지고, 땅이 세속적인 사람들을 떠나가며, 하늘은 세속적인 사람들을 거부할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은 “비참하고 비참하니 모든 것이 비참하도다”라는 말로 분명 바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들에 눈먼 영혼들은 얼마나 사소한 일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 즉 헛된 것을 위해 영광을 버리고, 고통을 위해 행복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헛된 것과 바꾸고, 영생을 그림자 같은 꿈과 바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마음에 영원토록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 로버트 딩글리 [ROBERT DINGLEY, 1619–1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