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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도를 향한 진정한 순종의 바탕에는 감사가 넘치는 사랑이 있다 [존 라일] 그리스도의 자비를 경험한 이의 놀라운 행동 [Grateful Love to Jesus] Eng.S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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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ee, lastly, in this passage, a striking example of the conduct which becomes one who has received mercy from Christ. We are told that when the blind man was restored to sight, "he followed Jesus, glorifying God." He felt deeply grateful. He resolved to show his gratitude by becoming one of our Lord's followers and disciples. Pharisees might cavil at our Lord. Sadducees might sneer at His teaching. It mattered nothing to this new disciple. He had the witness in himself that Christ was a Master worth following. He could say, "I was blind, and now I see." (John 9:25.) Grateful love is the true spring of real obedience to Christ! Men will never take up the cross and confess Jesus before the world, and live to Him, until they feel that they are indebted to Him for pardon, peace, and hope. The ungodly are what they are, because they have no sense of sin, and no consciousness of being under any special obligation to Christ. The godly are what they are, because they love Him who first loved them, and washed them from sin in His own blood. Christ has healed them, and therefore they follow Christ. Let us leave the passage with solemn self-inquiry. If we would know whether we have any part or lot in Christ, let us look at our lives. Whom do we follow? What are the great ends and objects for which we live? The man who has a real hope in Jesus, may always be known by the general bias of his life.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눅18:43) 맹인이 눈을 뜨고 난 후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씀을 전 날 살펴보았다. 그는 예수님을 향한 깊은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제자가 되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이 사람은 주님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전혀 요동치 않았다. 그리스도를 향한 진정한 순종의 바탕에는 감사가 넘치는 사랑이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고 평화를 느끼고 소망을 가지기 전에는 십자가 앞에 나아와 자기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죄에 대한 개념이 없으므로 여전히 세속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사랑해 주시고 그들의 죄를 당신의 피로 씻어 주셨기에 그 분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치유해 주셨으므로 그 분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본문의 말씀을 읽으며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우리는 어느정도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인가? 자신의 삶을 돌아 보자. 우리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님 안에 진정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삶의 태도로 구별된다. J. C. 라일(John Charles Ryle, 1816-1900)은 청교도의 영성을 소유한 지성적 목회자이다. J. C. 라일은 부유한 영국 가정에서 태어나 사립 명문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은행이 부도 나면서 집안이 몰락하여 라일은 유망한 직업과 사회적인 위치까지 모두 잃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인생의 암흑기’를 지내다가 성공회 사제직을 지원하여 안수를 받았다. 윈체스터, 헤밍엄, 서포크에서 39년간 사역하다가 영국 수상 벤자민 디즈레일리의 천거로 리버풀 주의 첫 주교가 되었다. 이것은 놀라운 사건이었는데, 그가 이미 정년을 넘긴데다가, 내각에서는 전통적으로 복음주의자를 주교로 임명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국 교회의 교리적 혼탁함을 ‘오직 성경으로’라는 정신으로 개혁하는 일에 힘썼다. 세례와 교인 등록이 거듭남을 자동으로 보장한다는 영국 교회 내의 의식주의자들의 견해에 맞서, 거듭남은 교회 의식이나 성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는 것임을 역설했다. 영국의 도시 가운데 가장 종파 의식이 강한 리버풀에서 여러 종파가 혼합된 교구를 20년간 섬기면서 라일은 여러 가지 난제들에 직면해야 했다. 사역 현장은 분열과 투쟁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주변 동료들의 존경을 받은 진실한 사역자였다. 확신에 찬 복음 증거자이면서도 그에게는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들을 편견 없이 대하는 관용이 있었다. 그의 죽음이 알려졌을 때 적대 관계에 있는 종파의 지도자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 시대 교회에 미친 영향력도 막대하였지만, 사후 그의 저작들이 광범위하게 읽히면서 더 높이 평가되었다. 그의 인생과 남긴 작품들은 우리에게 확고한 신앙과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잘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라일의 설교와 글은 교회가 거듭남에 대해 침묵하고, 교회의 의식과 제도에 충성하면 자동으로 천국 백성이 된다고 여겼던 시대에 하늘에서 떨어진 거룩한 폭탄이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J. C. 라일에 대해 “그는 스펄전과 더불어 쌍두마차를 이끌며 영국과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 청교도 목사로서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극찬했다. 라일은 철저한 청교도적 개혁주의자로서 복음적 교리를 신봉하며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신앙에 관한 실제적인 책들을 많이 펴낸 저술가이자 열정적인 설교자요 충실한 목회자였다. 그가 저술한 책들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출판되고 있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 영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오직 복음으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일이 설교자로서, 기독교 저술가로서 해야 할 본분임을 깊이 자각하였다. 그래서 그의 설교와 책의 중심 주제는 항상 복음, 곧 사람을 회개시켜 구원 얻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개인의 심령부흥, 교회의 부흥이 성령으로만 가능함을 믿어 늘 성령의 불을 구하였다. 그는 성령의 사람들에 대한 연구도 치열하게 하여 조지 휫필드, 다니엘 롤랜드, 하웰 해리스에 대해 정통하였다. J. C. Ryle의 생애 요약 1816년 5월 10일 Cheshire의 Macclesfield에서 태어났다. 1828년 1월 이튼 대학에 입하다. 1834년 10월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에 입학하다. 1837년 회심하다. ‘그의 생애에 가장 위대한 변화’라고 말했다. 1838년 2월 졸업하다 1841년 6월 부친이 집과 재산을 다 잃게 되자 Cheshire에서 그의 사회생활이 종 식되었다. 1841년 Parker Society가 영국의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출판 업무를 시작하다. 1841년 12월 성공회 사역에 입문하다. 1842년 Hants의 Fawley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다. 1843년 12월에 Winchester에서 교구 목사로 사역하다. 1844년 부활절에 Helmingham에서 교구 목사가 되다. 여기에서 청교도 Suffolk를 발견하다. 1845년 마틸다 플럼트리와 결혼하다. 소책자 사역을 시작하다. 1847년 조지나 딸 출산하다. 1848년 부인 마틸다가 죽다.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다. 1850년 제시 워커와 재혼하다. 그녀에게서 이사벨, 레지날드, 헐버트 및 아더가 태 어났다. 1851년 그가 발행한 소책자들과 강연집들을 묶은 두꺼운 책, Home Truths를 출판 하기 시작하다. 1854년 첫 번째 책 The Bishop, The Pastor, The Preacher를 출판. 1856년 복음주의자들과 협력사역을 시작하다. 1860년 5월 오랜 투병 끝에 제시 여사가 사망하다. 1861년 Stradbroke Suffolk의 교구 목사가 되다(Rector 다음에 오르는 Vicar가 된 것임) 1865년 요한복음 강론 제1권이 나오다. 1868년 그의 책 Christian Leaders of the Last Century와 Bishops and Clergy of Other Days가 출판되다. 1870년 교회협의회 부의장이 되다. 1870년대 런던과 옥스퍼드 및 케임브리지에서 자주 설교하게 되다. 1877-79년 Holiness, Old Path, Practical Religion를 출판하다. 1880년 63세에 Stradbroke를 떠나 리버플의 주교가 되었다. 1888년 람베스 컨퍼런스의 주교회의단의 선언문과 절연하다. 1889년 ‘잉글랜드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목사가 성경의 영감과 관하여 무엇을 가르 치든 상관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Henrietta가 죽다. 1899년 5월 14일 최후의 설교를 하다. 1900년 6월 10일 Lowestoft에서 사망하다. In 1837, John Charles Ryle was an outstanding athlete, excelling in cricket and rowing. But, when he became ill with a serious infection, he turned to his long-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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