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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지저스 -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미국의 아이콘이 되었는가? (American Jesus: How the Son of God Became a National Icon) 저자 : 스티븐 프로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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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한편으로는 세속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공적 생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미국인들이 예수에 대해 보이는 다양한 반응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본서는 성경이나 기독교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다양한 집단의 미국인들이 예수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왔는지를 종교 문화사적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종교와 예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미국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 서평]

본서는 '미제(Made in America) 예수'에 관한 책이다. 즉 미국인들이 건국 초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250년 동안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빗대어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 예수에 관한 책이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듯이, 미국인들은 줄곧 자신들의 문화를 따라 예수를 만들었다. 오늘날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세속적 나라인 동시에 종교적 국가이며, 다종교 국가인 동시에 가장 기독교적인 나라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수가 있다. 따라서 미국은 가히 예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미국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이 책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으며,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예수가 처음부터 미국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독립전쟁 이전만 해도 기독교는 미국의 소수 종교에 불과했다. 당시 북미에 정착한 기독교인들은 성부 하나님께 신학적 초점을 맞춘 채 신앙생활을 영위했다. 성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그들의 최고 관심사였다. 성자 예수는 단지 신조와 교리에 국한된 추상적 존재였다. 종교 개혁가 칼뱅이 세운 집에는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가 머물 방이 할애되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시작되며 유럽에서 건너온 자유주의 신학이 북미의 상황을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예수의 인간성이 강조되기 시작했으며 1791년에 수정헌법 제1조가 승인되자 곧바로 인간 예수의 매력이 설교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19세기 초반의 제2차 대각성운동은 칼뱅으로부터 예수를 해방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영적 혁명은 더 이상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성부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자비로운 성자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새로운 미국식 종교를 탄생시켰다. 19세기 초반에 시작된 이 영적 혁명은 첫째, 예수를 칼뱅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 둘째, 예수를 성경으로부터 해방시키며, 셋째, 예수를 기독교로부터 해방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미국인들이 어떻게 예수를 신조와 성경으로부터 해방시켰는지를 다룬다. 특별히 남북전쟁 직후 몇십 년 동안 성서비평, 비교 종교, 다원주의로 무장한 자유의자들이 앞장서서 예수를 성경으로부터 떼어내 '오직 성경' 대신 '오직 예수'로 대체한 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한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들은 교리적 예수가 아닌 인간 예수에게 열광하기 시작한다. 여성화된 예수를 필요로 하던 시기에는 순종적인 인물로서 예수를 강조하였고, 남성적 전사가 필요하던 시기에는 근육질의 영웅으로 예수를 둔갑시켰다. 그 후 히피 예수가 출현하였고, 심지어 KKK단의 예수도 만들어졌다. 20세기 중반에는 기독교 용품 제작자들을 중심으로 '웃는 예수'가 마케팅의 초점이 되었다. 이어서 적극적-긍정적 사고방식의 예수가 등장한다. 예수는 서글서글하고 쾌활하며 명랑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예수의 진짜 정체성은 타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는 최신 유행에 민감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자신의 메시지와 외모를 부단히 변모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인들은 “예수라면 어떤 차를 탈까?” “예수라면 어떤 저녁식사를 할까?” “예수라면 어떤 옷을 입을까?” 등을 고민하며 산다.

2부에서는 미국인들이 어떻게 예수를 기독교로부터 해방시켰는지를 다룬다. 모르몬교도들은 '장형 예수'를 창시하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 랍비들은 반유대주의에 맞서 예수가 유대인이었음을 강조하였다. 흑인들은 해방자 예수를 신봉한다. 힌두교도와 불교도들은 동양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항하고자 요기 예수, 부처 예수를 만들어냈다. 이로써 온갖 종류의 예수가 미국의 거리를 활보하고, 사원을 지배하며, 가게의 진열장에 놓여 있다. 미국은 거대한 다원주의 국가로서 인종, 성, 종교, 계급, 민족 전시장과 같은 나라다. 그 가운데서 예수는 그 모든 것을 연결하는 문화적 화폐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은 "예수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모습과 예언력을 가진 바다의 신인] 프로테우스처럼 다양한 형태를 가진 나라"다.

물론 여전히 미국에는 성경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전통 신조를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많다. 하지만 상당수 미국인들이 칼뱅주의, 성경, 기독교로부터 예수를 탈출시킨 결과 성경과 기독교 신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께 접근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진실이다. 예수가 미국을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미국이 예수를 변화시킨 것도 참이다. 예수는 표면적으로는 장기판의 '왕' 같은 존재지만 실제로는 '졸'이 되어 미국인들의 손가락에 의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그들의 비위와 필요를 맞춰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예수의 실상이다. 본서는 바로 이런 점을 구체적 사례와 데이터를 들어가며 상세히 추적한다. 따라서 미국을 이해하고, 미국의 종교를 이해하며, 미국의 기독교를 좀 더 객관적으로 연구하려는 사람에게 본서는 필독서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본서는 한국 기독교를 향한 질문과 과제 또한 안겨준다. 과연 한국 기독교의 예수 이해는 어떠한가? 겉보기에는 정통 신앙과 자유주의 신앙이 서로 양립하며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한국 기독교 역시 자신들의 욕망과 경험에 빗대어 창조한 다양한 예수상이 공존하거나 경쟁하는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갈수록 더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예수에 대한 연구와 이해를 넘어서서, 지난 한 세기 이상에 걸쳐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예수의 모습에 대한 면밀한 추적과 분석이 나와야 할 때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한국 교회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참된 예수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절실하다. 본서는 이 중차대한 과제에 대한 선행연구로서 매우 중요한 멘토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독교에 대한 문화사회적 연구의 이정표가 된 본서의 가치가 여기 있다.
미국 종교에 관한 이 특별한 이야기의 주제는 예수, 보다 정확하게는 미국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예수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이 책이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보는 진영에 속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평가 중 많은 부분이 교회 밖에서 출현했다. 즉 음악, 영화, 문학에서, 그리고 유대교 신자, 힌두교 신자, 불교 신자,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서 출현했다. 그러므로 미국의 예수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조사를 기독교에 제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기독교가 어떻게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 모두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다양한 미국의 종교 경험들이 어떻게 기독교 메시지의 공적인 힘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조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유형의 미국인들이 어떻게 나사렛 사람을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거울을 통해 미국 문화의 만화경(萬華鏡)적 성격을 조사해야 한다.
_개요

기독교를 부정하고 예수는 긍정하는 제퍼슨의 신앙은 확실히 하나의 수수께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판 스핑크스”라 불리고 있는 제퍼슨을 종족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하나의 모순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제퍼슨의 종교는 전혀 모순적이지 않다. 사실 그의 종교는 미국의 종교 역사를 관통하고 오늘날 우리와 함께하는 원동력을 대표한다. 제퍼슨은 예수에 대한 사랑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 사랑 때문에 현재의 기독교를 미워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 신앙을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성현 중 으뜸”인 존재를 찬미하고, 존경하고, 아마도 사랑하기까지 할 수 있었다. 제퍼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유사한 정서를 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제퍼슨은 미합중국의 창시자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예수 국가의 창시자다.
_1장 성현

미국 종교의 여성화의 중요한 효과 중 하나는 성자에 의해 성부가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힌두교 변증자들은 오랫동안 숙달된 다신론자라도 한 번에 한 신만 예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삼위일체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하는 듯하다. 그들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신성을 긍정하지만 자신의 대부분의 헌신을 세 분 중 한 분에게만 집중하는 듯하다. 식민지 시대의 청교도들에게는 그러한 헌신의 대상이 성부다. 현대의 많은 오순절 파들에게는 성령이 헌신의 대상이다. 19세기의 복음주의자들에게 그 대상은 성자다. 그러나 남북 전쟁 전의 개신교인들은 예수에게 그들의 헌신을 보내는 데서 훨씬 더 나아갔다. 그들은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이상형에 비추어 예수를 개조했다. 그들은 다른 미국인들이 여성과 남성을 구분했던 것과 같은 현격한 대조를 예수와 그의 성부에게 적용해서 예수를 경건하고, 순수하며, 사랑을 베풀고, 자비롭고, 온유하고, 겸손한 인물로 묘사했다.
_2장 사랑스러운 구주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서』는 수백만 권이 팔렸고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 역되었지만, 셸던이 남자다운 그리스도 복음의 가장 중요한 전도자는 아니었다. 그 타이틀은 브루스 바튼(1886-1967)이라는 평신도에게 속한다. 바튼의 베스트셀러 『미지의 인물: 진정한 예수의 발견』(The Man Nobody Knows: A Discovery of the Real Jesus, 1925)은 대개 소비자 자본주의에 대한 소책자로 여겨지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도 남자다운 그리스도에 대한 개요다. 이 책은 또한 『미지의 인물』이 출현했을 때 수십 년 동안 예수의 여성화를 비난하고 있었던 저자의 부친 윌리엄 바튼에 대한 경의(敬意)이기도 했다.
자기 세대의 다른 자유주의 그리스도인들처럼 현대 상황에 의해 제기된 지적·사회적 도전을 회피하지 않았던 회중교회 목사였던 아버지 바튼은 다작 작가다. 그는 호평을 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전기 등 수십 권의 책들과 특히 세례 요한, 가룟 유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관점에서 본 창의적인 일련의 복음서들을 썼다. 삽화가 많이 들어간 8절판 책인 『나사렛 예수』(Jesus of Nazareth, 1903)에서 바튼은 티소의 예수를 “창백하고 약한 인물”, 즉 “무력한 그리스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그림들에서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예수의 “여자 같은 부드러움”을 조롱했다. 바튼에 따르면 여러 세기의 화가들이 서로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를 여성의 얼굴로 그리고, 거기에 수염을 추가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_3장 남자다운 구속자

학자들은 19세기 말의 자유주의자들과 20세기 초의 현대주의자들은 모두 한동안 철저하게 예수 중심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적인 개신교 주류가 1920년대에 공적인 힘을 잃었을 때에도 예수는 계속 미국의 기독교를 지배했다. 초기 빅토리아 시대의 감상적인 경건을 상기시키는 예수 운동과 그 이후의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의 삶의 중심을 예수와의 개인적인 관계에 두었다. 1970년대 초에 자신과 선구적인 예수 록음악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래리 노만은 “비전은 예수, 예수, 예수다”고 말했다. 희한하게도, “신의 죽음” 신학자들도 같은 말을 했다.
현대주의자들(복음주의자 등)이 그들의 최선을 다함에 따라 뭔가가 상실되었다. 거듭난 기독교에서조차도 교리의 상실이 편만하다고 비난하는 오늘날의 칼뱅주의자들의 불만은 정당하다. 그러나 승리하기 위해서는 예수 운동, 초대형 교회, CCM뿐만 아니라 (공격적으로 광고했던) 드와이트 무디, (기독교 노래들을 인기 있는 음악으로 만든) 아이라 생키, (신학을 싫어했던) 빌리 선데이 그리고(복음 전도 사업을 완성한) 빌리 그레이엄도 취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친절하고 부드러운 구주로 포용하기로 결정해서 미국에 “구도자들에 민감한” 최초의 교회들을 만든 19세기 초기의 복음주의 회중들도 취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_4장 슈퍼스타

(대중들에게 모르몬교도로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신도들에게는 신적 영감을 받은 성경으로 인정받는 모르몬 경전은 - 신실한 후기성도 신자들에 의하면 - 조셉 스미스 주니어(1805-44)가 뉴욕주 상부(upper New York state)에서 1820년대에 발견한 고대 황금판의 번역본이다. 킹 제임스 역본의 용어와 구약 연대기 장르를 통해서 말하는 이 서사는 대략 기원전 600년부터 기원후 421년까지 1,000년에 걸쳐 펼쳐진다.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인 리하이는 예수가 탄생하기 600년 전에 아내 새라이아와 여섯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이 아들들 중 둘인 니파이와 레이맨은 선한 (그리고 밝은 피부색의) 니파이파와 악한 (그리고 짙은 피부색의) 레이맨파로 갈라져 전쟁을 벌인다. 기원후 421년에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레이맨파는 니파이파를 학살한다. 자기 부족이 말살되기 전에 최후까지 살아남았던 사람 중 한 사람인 모로나이라는 의로운 니파이파가 있었다.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또 다른 유일한 생존자인 이스마엘을 예견한 모로나이는 자기 아버지 모르몬이 쓴 이야기를 남긴다. 어두운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을 예견한 그는 자기 이야기가 살아남도록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이 이야기들을 귀금속에 새겼다. 그 황금판은 천 년도 더 지나서 조셉 스미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_5장 모르몬교들의 장형

43명의 사망자와 1,000명이 넘는 부상자를 낸 1967년 디트로이트 인종 폭 동의 여파로 한 무리의 흑인들이 디트로이트 세이크리드 하트 신학교에 세워진 예수상의 얼굴을 검게 칠했다. 몇몇 백인들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 상을 하얗게 칠했다. 선전 트럭이 성직자들이 예수를 하얗게 칠했다고 비난하며 학교를 지나간 뒤, 신학생들이 나서서 이 상을 검게 칠했다.
폭동이 발생하기 몇 달 전, 알버트 클레이지 주니어(1911-2000)는 자신 의 블랙 마돈나 사원에 약 5.5미터 크기의 거대한 블랙 마돈나와 아기 그림을 설치해서 예수의 피부색을 이 도시의 의제로 올려놓았다. 폭동이 발생한 뒤 오래지 않아 디트로이트 소재 성 세실리아 로마 가톨릭교회는 두툼한 입술과 곱슬머리를 한 “흑인 그리스도”(Black Christ)의 놀라운 얼굴을 공개했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천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1969년에 세실리아 성당의 “흑인 그리스도”는 「에보니」(Ebony) 지에 등장했다. 잡지 본문에서는 “흑인 그리스도 탐구”라는 글이 또 하나의 예수 논쟁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 성 세실리아 성당의 레바논계 미국인 사제 레이몬드 엘리스 신부는 “우리는 그리스도가 흑인이기만 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단지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흑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원할 뿐이다.” 그러나 나중에 자라모기 아베베 아기예만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되는 초교파 흑인 기독교 민족주의자 운동(Black Christian Nationalist Movement) 창시자인 클레이지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예수가 흑인이라면 좋지 않겠는가?’ 또는 ‘예수가 흑인이라고 가정합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가 흑인이었다고 말한다. 백인 예수는 존재한 적이 없다.” 머지않아 전 국민들은 클레이지가 그의 지지자들이 주
장하는 바와 같이 흑인들의 다음번의 영웅인지 아니면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종교적으로 무식한” 선동가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 드라마가 펼쳐지는 동안 미국 흑인 사회는 민권 운동과 블랙 파워로 갈라졌다. 1968년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뒤에도 대부분의 흑인 교회들은 킹의 비폭력 시민 불복종 전략과 그의 통합 목표를 지지했다. 블랙 파워 운동은 킹의 전략과 목표를 거부했다. 대체로 세속적 운동인 블랙 파워는 블랙 팬더스(Black Panthers)와 스토클리 카마이클의 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 SNCC) 같은 단체들에 의해 인도되었다. 그러나 블랙 파워는 또한 이슬람 국가(Nation of Islam; NOI)로 알려진 신생 흑인 교파에 영적 중심을 두고 있었다. 인종이 확실하지 않은 순회 설교자인 월리스 D. 파드가 1930년에 디트로이트에서 설립 NOI는 수십 년 동안 정치적 힘보다는 (파드 자신이 알라의 화신이라는 놀라운 주장 등) 이슬람에 대한 색다른 해석으로 더 많이 알려진 작은 조직이었다. 이슬람 국가는 1934년 파드가 신비하게 실종된 뒤 그의 뒤를 이어받은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지도 아래 1950년대에 흑인 사회의 주요 종교적 대안이 되었다.
_6장 흑인 모세

『유대인의 눈으로 본 예수』(Jesus Through Jewish Eyes, 2001)라는 최근의 책은 예수에 관한 유대인 랍비, 평신도, 학자들(거의 모두 미국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다)의 수필과 시를 수록하고 있다. 한 수필가는 현재 미국 문화는 “예수 문화”라고 썼다. 미국에서 예수는 “사실상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미국인들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예수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정의한다. 또 다른 필자는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유대인으로 인정해야 할 때다.…또한 이제 유대인들이 예수를…형제로 되찾을 때이기도 하다”라고 썼다. 이 책에 기고한 한 수필가는 해묵은 농담으로 이 점을 지적한다. “예수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는 자기 아버지의 직업을 가졌고, 서른 살까지 집에서 살았으며,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 어머니가 있었다!” 이 수필은 약간 더 나은 유머로 끝맺는다. 나이가 들어가는 한 유대인 여성이 병상에서 커다란 예수 사진이 보이는 가톨릭 병원에 입원해 있다. 지나가던 수녀가 그 여성이 유대인임을 알아차리고 그 사진을 치우겠다고 제안한다. 그 여성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에요. 우리 민족 출신 청년 중 그렇게 성공한 사람도 없지요. 그냥 놔 두세요!”
아마도 유머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농담들 및 유대인 사회 외부에서 그러한 농담들이 만연하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유대인 예수에 관한 역사에 대해 최소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이 농담들은 첫째, 유대교에서 예수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대교에서 자랑스럽게 예수를 차지하려는 프로젝트는 미국에서 1860년대에 시작되어서 1890년대에 증가되었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정점에 도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 이후 유대인 예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미국의 유대인 공동체나 미국 문화 일반에서 그 관심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이러한 농담들에 웃는 이유는 유대인 예수가 비정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예수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예수는 선량한 유대 청년이었다는 것을 안다.
이 농담들은 둘째, 예수 문제가 이제는 더 이상 이전 세대의 유대계 미국인들에게서만큼 뜨거운 논쟁거리가 아님을 암시한다. 예수에 관해 얘기하거나 글을 쓰는 유대계 미국인들은 예수에 관해 좀처럼 쿠르노스처럼 알랑거리지 않는다. 애쉬의 후계자들이라기보다는 샌드멜의 후계자들인 그들의 저작은 일반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다. 예수를 좋은 유대인으로 묘사하면 아직도 예수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을 반역자라고 비판하는 많은 정통파 유대인들의 피를 끓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쿠르노스와 애쉬에게 가해졌던 거친 표현들은 대체로 완화되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수를 유대인이라고 한다 해서 반드시 유대인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더구나 회복주의자들의 반항 정신(예수를 많은 유대인들 중 하나로 환생시킨 점과 특히 자신들이 예수가 참으로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평균적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잘 이해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차츰 더 명백해졌는데, 이는 특히 유대인 학자들이 예수 전기로 상을 받은 데서 잘 드러났다. 예수가 기독교 선교에 대항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데 왜 유대인 예수에 반대하겠는가?
_7장 랍비

이런 체계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베단타 학파는 원죄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파라마난다는 이렇게 말한다. “베단타는 우리가 죄를 강조하기를 금한다.” “아무도 죄인이라고 부르지 마라. 모든 사람은 불멸의 축복의 자녀들이다.” 베단타 학파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완벽하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에게서 그러한 완벽성이 드러나지 않고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은 무지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신성에 대해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구원에서 예수의 역할은 우리의 속죄가 아니다. 파라마난다는 “우리가 어떤 구주를 믿는다면 우리는 그저 손을 내어 그가 우리를 구하도록 하면 된다는…아이디어는” “중대한 잘못이다”라고 쓴다. 아바타의 목적은 인간의 신성을 구현하고 다른 사람들을 완벽함으로 이끄는 것이다. 비베카난다는 예수가 “세상의 죄를 가져간다”는 기독교의 주장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완벽해지는 방법을 보여줄 것임을 의미한다”라고 썼다. 예수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말하지 않았는가? 예수, 실로 모든 아바타의 역할은 우리가 그러한 완벽성 - 그가 누렸던 신에 대한 직접적인 깨달음 - 을 달성하고 (베단타 학파가 가장 좋아하는 근거 텍스트들 중 한 구절에서) 예수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 10:30)라고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있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 미국의 그리스도인 중 대다수가 갖고 있는 예수에 대한 견해는 이와 아주 다른데, 그들은 죄의 실재성과 그들의 구세주의 독특성 모두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 스와미들은 그것이 문제라고 믿었다. 전통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하나뿐인 독생자라는 예수의 지위를 긍정함으로써 무한한 신을 제한하고, 예수를 독단화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소위 “이교도들”을 증오하는 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독단적인 그리스도, 조직과 제도의 신조에 얽매인 그리스도”를 고수하는 반면, 베단타 학파는 “신성의 혼이자 무한한 하늘을 칸막이로 나눌 수 없듯이 칸막이로 나눌 수 없는 존재인 그리스도”를 생각해냈다.
_8장 동양인 그리스도

아마도 미국의 예수는 이 나라가 다종교 국가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결국 이곳에서는 불교 신자, 흑인 유대교 신자, 모르몬교도와 무슬림들 모두 미국의 문화적, 종교적 내부자들보다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모르몬교도들은 모르몬 경전과 보다 최근의 계시에 근거해서 자신들이 예수에 대해 더 나은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예수를 더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랍비 번하드 펠젠탈은 “유대인들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며,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종교에 대해 완전히 이질적인 많은 교리들을 고백하는 한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썼다. 이는 대담한 주장들이지만 여기서는 모세나 조셉 스미스가 아니라 예수가 주제임을 기억해야 한다. 붓다는 일부 그룹에서는 사랑받고 숭배되고 있지만 그는 미국의 영웅이 아니며 미국은 그의 생일을 휴일로 기념하지 않는다. 분명히 예수에게 비춰지는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의 다른 종교들보다 미국의 기독교를 훨씬 더 많이 부각한다.
미국의 예수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거나 다종교 국가라는 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인 동시에 다종교 국가임을 보여준다. 예수는 기독교의 힘 때문에 미국의 주요 인물이 되었지만 오로지 종교적 이견의 힘 때문에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개신교인들 가운데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살고 있는 예수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개신교 국가로 시작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적이면서도 종교적으로 가장 다양한 국가, 법률적으로는 세속적이고 국민의 선호상으로는 종교적인 국가로 발전했다. 이 나라 국민들의 중요한 문화적 산물인 미국의 예수는 우리에게 미국에서는 기독교가 우세하다는 사실, 즉 모든 종교 신봉자들과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들 모두 미국의 예수의 핵심적인 상징들을 인지해야 함을 말해준다. 그는 또한 기독교의 대중적인 힘은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절대적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은 심지어 자기 종교의 중심인물에 대해서조차 독점권이 없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미국의 예수는 미국에서는 성과 속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도 말해준다. 예수는 유대교의 인물이고, 기독교의 인물이며, 무슬림의 인물이지만, 세속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예수에 관해 가장 흥미를 자아내는 몇몇 개념들은 종교 집단의 외부, 즉 교회에 다니지 않는 화가, 음악가, 소설가들에게서 비롯되었다. A. J. 랭거스의 『예수 그리스도들』(Jesus Christs, 1968)은 공상 과학계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부분적으로는 공공 도서관에서 너무 자주 도둑맞기 때문이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리한 예수 소설일 것이다. 「뉴욕 타임즈」에 베트남 전쟁 기사를 실었던 랭거스는 예수를 포레스트 검프보다 능숙하게 시공을 가로질러 고대 팔레스타인, 나치 독일, 현대 미국에서 죽었다 부활하기를 반복하는 인물이라고 상상한다. 한 장면에서는, 그는 전기의자에 묶인 사형수이면서 자기 자신에게 마지막 의식을 베푸는 목사로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들』(Jesus Christs)은 미국 문화에서 예수의 순응성과 다양성을 조소하지만 이 소설은 또한 예수가 살아 움직일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종교 제도의 한계들 너머로 넓힐 수 있는 능력이 있음도 강조한다.
_결론
개요

1부 부활
1장 성현
2장 사랑스러운 구주
3장 남자다운 구속자
4장 슈퍼스타

2부 환생
5장 모르몬교도들의 장형
6장 흑인 모세
7장 랍비
8장 동양인 그리스도

결론
사건 연대표
참고문헌
감사의 글
이 책은 미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기독교의 ‘예수’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미국 사회 속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형성되어왔는지를 살핀다. 미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하고 특별히 다양한 구성원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소비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은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 김상덕.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이 책은 종교적 아이콘으로서 예수가 일상적 종교 생활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기막히게 보여주는 종교문화사적 발칙한 시도다. 그래서 도발적인 자극과 함께 자지러지는 재미를 선사한다.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에 들어선 한국기독교의 미래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교수

본서는 교리적 예수와 역사적 예수를 넘어 문화의 예수를 보여준다. 저자는 미국인들의 종교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예수의 흔적을 따라가며 독자들에게 기독론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 윤영훈. 성결대학교

아주 흥미진진한 책이다. 프로테로의 이 책은 미국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예수’가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고, 소비되고, 숭배되었는지를 시공간을 넘나들며 풍성한 사례를 들어 묘사한다. ‘미국 예수’의 다양한 문화적 면모를 빼어나게 그려낸 수작 다큐멘터리다.
- 이재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이 책은 미국 역사와 문화 250년간 예수가 문화적으로 성육화한 다양한 시대의 앞마당과 뒷골목 풍경을 마치 만화경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여준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자세하게 알기 위해, 무엇보다 재미있게 즐기면서 미국의 숨겨진 문화적 저력을 살피고 예수로 소급되는 그 미제 기독교의 뿌리를 배워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필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
- 차정식. 한일장신대학교 신학과, 한국신약학회 회장

『아메리칸 지저스』는 신학과 세속 문화의 분리를 무너뜨리려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 샤론 얼만. 「보스턴 로브」

프로테로는 상상력이 풍부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미국의 예수에 대한 탐구를 수행하며, 학자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도록 그가 발견한 내용을 명료하고 생생한 언어로 기록한다.
- 유진 맥카라허. 「시카고 트리뷴」

대중문화를 강조하는 미국 문화를 통해 예수라는 인물이 신학적 연결 또는 교회와의 연결에서 분리되어, 거의 모든 것을 홍보하는 아이콘이 된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매혹적인 유희다.
- 「퍼스트 씽스」

『아메리칸 지저스』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매혹적인 개요를 제공하며, 신자들에게는 예수의 원한 힘과 영광에 대한 증언이고, 회의론자들에게는 얼간이들이 참 많다는 증거다. 이 책이 양장본으로 나오자마자 완전히 새로운 미국 역사 탐구이자 최근에 영어로 나온 예수에 관한 책 중 가장 사랑스러운 책이라고 칭찬받았다.
- 댄 크라이어. 「뉴스데이」

프로테로는 아주 음흉하다. 그는 노래, 이야기와 영성 안에 예수에 대해 설명하는, 겉보기에는 인기 있고 때로는 재미있는 자신의 내러티브 안에 미국 종교 자체에 대한 상당히 자세한 역사를 심어 놓았다.
- R. 스콧 애플비. 「뉴욕 타임즈」

스티븐 프로테로
보스턴 대학교 종교학부 학장이다. 그는 『백인 불교 신자: 헨리 스틸 올코트의 아시아 오딧세이』(The White Buddhist: The Asian Odyssey of Henry Steel Olcott)와 『불로 정화되다: 미국 문화사에서 화장(火葬)의 역사』(Purified by Fire: A History of Cremation in American Culture)의 저자다. 『아메리칸 지저스』는 「퍼블리셔스 위클리」로부터 2003년 최우수 종교 도서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시카고 트리뷴」으로부터 올해의 최우수 논픽션 도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프로테로는 「뉴욕 타임즈 매거진」, 「보스턴 로브」,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 저널」, 「살롱」 등에 기고하고 있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이스트 샌드위치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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