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 함께
마지막 승리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겠는가?”(시89:48). 은혜가 우리를 죽음에서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흙으로 만든 그릇은 금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깨집니다. 흙으로 만든 그릇인 의인들은 비록 의인들이 금처럼 귀한 은혜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죽음으로 깨어지는 일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의인들의 죽음은 고귀합니다. 악인들은 높은 횃대에 앉아서 울어대는 매와 같습니다. 악인들이 죽고 난 후에는 아무도 악인들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의 삶은 기도할 가치도 거의 없고, 악인들의 죽음은 눈물을 흘릴 가치도 거의 없습니다. 악인은 자기 죄 가운데 죽습니다(요8:24). 악인들에게 죽음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문일 뿐입니다. 그러나 의인이 죽었을 때는 의인의 죄도 의인과 함께 죽습니다. 죽음의 창백한 얼굴이 어린양의 피뿌림을 받아 붉게 보입니다. 신자가 육체 가운데 죽었을 때, 신자의 영혼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죽는 날은 천국으로 올라가는 날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귀한 것이기에 하나님이 의인들을 모으신다고 했습니다. 죄인은 폭풍 가운데 날려가지만 의인은 우리가 귀한 과일을 모아 보관하는 것처럼 모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매우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도의 모든 핏방울에 대해 추궁하십니다. 성도의 죽음은 살아남은 성도들에게 귀중합니다. 살아 있는 성도들은 경건한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슬퍼하며 쏟아지는 눈물 가운데 무덤으로 향합니다. 악인의 무덤 속에는 지옥으로 굴러 떨어질 한 줌 흙이 놓여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몸의 흙은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의 일부입니다. 성도의 흙은 무덤에 있을 때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현재 그 흙이 훌륭한 것과 마찬가지로 잠시 뒤면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 나타나 보이게 될 것입니다. 로마에서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유골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부활하여 그 아름다움과 힘과 민첩함과 불멸성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된 성도의 부활한 유골도 존귀히 여김 받게 될 것입니다.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 162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