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창세기 44:1-2)
훈훈한 분위기에 긴장감이 맴돕니다. 양식을 사는데 성공한 야곱의 아들들은 시므온과 베냐민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애굽의 총리 요셉이 개입합니다. 그는 주도면밀하게 형제들을 체포할 계획을 실행합니다. 도대체 요셉은 왜 이럴까요? 자신을 죽이려 한 형들에게 복수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복수를 꼭 이런 식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비를 베풀었다가, 이내 돌변하는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요셉이 아직 형들을 용서하지 못하여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예표로 등장하는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끝까지 신뢰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요셉의 행동에는 이유와 교훈이 들어 있음을 생각하며 본문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허투루 들어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창세기 44:12-13)
요셉은 베냐민만을 잡으려 합니다. 베냐민을 종으로 삼을 테니 나머지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20여 년 전 자신을 종으로 팔아버린 상황을 재연합니다. 그리고 형들의 반응을 주목합니다. 도단에서 미련 없이 돈을 받고 요셉을 종으로 넘긴 형들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이 위기 속에서 베냐민을 어떻게 대할까요? 혹시 베냐민을 넘기고 자기들만 살 길을 찾지 않을까요? 그러나 형들은 변했습니다.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창44:16). 형들은 베냐민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변호했습니다. 친구여, 우리가 받을 교훈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은 철저한 회개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골탕 먹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정직하게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직시하고 돌이키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변화된 삶을 살아내길 원하십니다. 성도여, 주께서 당신의 삶에 개입하시어,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를 생각나게 하시면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을 슬프게 한 모든 죄악을 토설하십시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창세기 44:32-33)
유다는 잘못을 인정하며 요셉 앞에 섭니다. 자신이 대신 종이 되겠다고 하며 베냐민을 풀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다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대언자 되신 유일한 구주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유다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심판자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편에 서 주십니다. 형제자매여,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 사실로 인해 감사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당신도 다른 이를 위해 나서 주십시오. 억울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십시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은 영적인 면에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용서와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이웃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