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 함께 합당한 예배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기까지는 아무도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더 알고 확신하게 될수록 더 온전한 예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구세주는 기도를 가르치실 때 “우리 아버지여”하고 말하게끔 하셨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확신하게 되기 전까지는 감히 아무 간구도 하지 마라.”는 말씀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로 기도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기도의 영 가운데 “아빠, 아버지”하고 부르짖게 하는 것은 바로 양자됨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롬10:14)라는 확신을 갖지 않고는 아무도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없게 만드십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2). “내(탕자)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눅15:18). 극악한 죄를 지었음에도 아들이 찾아가야 하는 대상이 자기 아버지임을 생각했을 때, 아들은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비록 우리 자신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주시리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 아서 힐더삼(Arthur Hildersham, 1563~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