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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호튼) 『오디너리』2부 8장 "또 다른 영웅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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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너리 Part 2. 평범과 만족

Chapter 7. 또 다른 영웅은 필요 없다

We dont need another hero.

 

영웅주의는 그리스도를 ‘절대 영웅’으로 축소시킨다.

영웅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

1. 이야기 자체가 실제로 그들을 미화시키지 않는다.

2. 신약성경의 해석을 살펴보아야 한다.

3. 성경 전체의 맥락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미국 건국의 영웅들 중에는 정통 기독교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들이 많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목회자가 청소년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교인으로서 공동체 앞에서 믿음을 고백하도록 준비시켰다. 그런데 교리문답 공부반이 주일학교로 바뀌고, 주일학교에서 다시 청소년부로 올라가는 체제가 된 이후, 다음 단계의 성장을 도모해야 할 시점에 이르면 오히려 교회를 멀리하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우리에게는 영웅보다는 구원자가 필요하다. 영웅보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시간을 할애해 주고 경건한 신앙 인격을 보여 줄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소명: 문화 변혁인가, 사랑의 섬김인가?

 

1. 혁신적인 사회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보다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가 쉽다.

2. 문화 변혁에 관한 급진적인 견해는 우리가 세상에서 소명을 감당하는 데 나쁜 영향을 끼친다.

3.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행하는 소명을 확증하는 효과를 낳겠지만, 하나님의 은사를 계속 순환하게 만드는 평범한 소명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4. 급진적인 사회 변혁을 추구하다 보면 일종의 ‘사회적 신분 상승(upward mobility)’을 종교화한 개념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5. 문화 변혁적인 사역은 소설가나 화가, 물리학자, 국회의원, 학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충돌하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문화에 관한 우리의 신학을 개혁하자

 

20세기 말에 미국 사회에 느닷없이 등장한 하나의 문화 세력: 복음주의자들.

‘기독교 우파’로 알려진 이 운동은 여러모로 볼 때 실패작. 신학적/문화적으로 깊이가 없었다.

“우리는 타락하여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 있는 이 세상에서 상대적인 정의와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우리는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갈 뿐, 기독교 왕국이라는 환상을 좇지는 않는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오늘날 세상 나라들을 다스리고 계시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구원의 은혜를 통해 교회를 다스리시며 일반 은총을 통해 세상의 권세들을 다스리시느냐 하는 것이다.

“문화 변혁을 강조하는 태도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교회와 교회의 사역으로 축소하고, 다가올 미래를 현재에 귀속시키는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특별 은총과 일반 은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대의명분을 좇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동안, 탁월함을 결정하는 척도: 삶 속에서 날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

 

“루이스나 톨킨이 자신의 소설에서 그리스도를 언급한 적이 있는가? 바흐의 소나타가 기독교적인가? 가난한 자를 먹이고, 가구를 만들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저녁 노을을 그리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더욱 본받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예배 인도자가 수위보다 더 신령하다는 것은 오만하고 그릇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소명과 쓰임새는 매우 다양하고, 그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낸다.

문화 변혁의 이상은 충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을 무시하는 집단적인 야심이 드러난 것이다.

신실한 현존: 신자와 이웃으로서 세상에서 주어진 소명에 충실함으로써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나서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정체성을 평범한 일상에서 충실히 실천

 

평범한 사람들

 

“그 순간에 필요한 작은 일을 제쳐 두고 좀 더 중요해 보이는 일을 선택한다면, 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잠 잘 시간에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일이 따분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가정 예배나 경건의 시간도 그럴 수 있다. 학생에게는 매일 해야 하는 숙제가, 교사들에게는 답안지를 채점하는 일이 일상적인 허드렛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의사와 간호사도 날마다 회진하는 일이 종종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소명, 좀 더 정확히 말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이웃을 날마다 신실하게 섬기는 일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선택하고 구원하신 성도들과 교제해야 한다. 세대와 인종과 사회 경제적 배경이 제각기 다른 신자들, 곧 세례를 통해 한 성령으로 하나의 믿음 안에서 한 분이신 주님과 연합한 평범한 신자들이 필요하다. 생명의 말씀과 성례를 충실하게 전하는 평범한 목회자, 신앙의 성장을 돕는 장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한시적인 은사들이 잘 순환되도록 돕는 집사가 필요하다.

 

“사회에서는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한 평범한 이웃들이 필요하다. 이웃들과 거리를 두고서 혼자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면서 나서는 그리스도인보다, 믿는 이웃이든 믿지 않는 이웃이든 가리지 않고 그들과 함께 날마다 은사를 나누는 그리스도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 성경은 도둑질하는 사람에게 수도사나 유명한 복음전도자가 되라고 말하지 않고,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라고 권고한다( 4:28).

“그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말로 다할 수 없이 막대했다. 왜냐하면 세상의 선을 증진시키는 일은 겉으로 하찮게 보이는 행위들에 어느 정도 의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들이 예상과는 달리 우리에게 그렇게 심하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무덤 속에서 안식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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