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라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2:17-29)
슬픔과 어려움에 대한 성도의 태도는 고난들을 막아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매번 슬픔의 불을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아'를 보존하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슬픔의 불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고통 안에서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슬픔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슬픔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의 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일 슬픔을 피하려고 하거나 슬픔과 관련된 사건을 거부하려고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생 가운데 슬픔은 가장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슬픔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죄와 슬픔과 고난은 항상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실수로 허락하셨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슬픔은 많은 천박한 것들을 불태웁니다. 그렇다고 항상 사람을 더 훌륭하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고난은 내게 자아를 찾게 하든지 또는 자아를 파괴합니다. 당신은 성공 속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성을 잃습니다. 단조로운 삶 속에서도 자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평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는 슬픔의 불 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왜 꼭 슬픔에서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별개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과 인간의 경험은 그것이 사실임을 알려 줄 뿐입니다. 슬픔의 불을 지나 그 슬픔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 당신은 언제나 그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이러한 사람을 찾아가면 그는 당신을 위하여 충분한 시간을 내어줄 것입니다. 슬픔의 불을 지나지 않은 사람들은 남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신을 위하여 내어 줄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슬픔의 불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한 영양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Receiving Yourself in the Fires of Sorrow By Oswald Chambers
…what shall I say? "Father, save Me from this hour"? But for this purpose I came to this hour. "Father, glorify Your name." —John 12:27-28
As a saint of God, my attitude toward sorrow and difficulty should not be to ask that they be prevented, but to ask that God protect me so that I may remain what He created me to be, in spite of all my fires of sorrow. Our Lord received Himself, accepting His position and realizing His purpose, in the midst of the fire of sorrow. He was saved not from the hour, but out of the hour.
We say that there ought to be no sorrow, but there is sorrow, and we have to accept and receive ourselves in its fires. If we try to evade sorrow, refusing to deal with it, we are foolish. Sorrow is one of the biggest facts in life, and there is no use in saying it should not be. Sin, sorrow, and suffering are, and it is not for us to say that God has made a mistake in allowing them.
Sorrow removes a great deal of a person’s shallowness, but it does not always make that person better. Suffering either gives me to myself or it destroys me. You cannot find or receive yourself through success, because you lose your head over pride. And you cannot receive yourself through the monotony of your daily life, because you give in to complaining. The only way to find yourself is in the fires of sorrow. Why it should be this way is immaterial. The fact is that it is true in the Scriptures and in human experience. You can always recognize who has been through the fires of sorrow and received himself, and you know that you can go to him in your moment of trouble and find that he has plenty of time for you. But if a person has not been through the fires of sorrow, he is apt to be contemptuous, having no respect or time for you, only turning you away. If you will receive yourself in the fires of sorrow, God will make you nourishment for other people.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12:27~28]
슬픔과 고난을 당하는 성도는 그것을 막아 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극심한 슬픔을 겪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을 지킬 수 있도록 보호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시고, 목적을 마음 깊이 새기시며, 극심한 슬픔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셨습니다. 주님은 고난의 시간으로부터 구원받으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시간 속에서 구원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삶에 슬픈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 슬픔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슬픔의 아픔속에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슬픔을 마주 대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슬픔은 인생에서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죄, 슬픔, 고통은 우리 인생의 중대사들이며, 이런 일이 하나님의 실수도 생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슬픔은 많은 경박한 것들을 제거해 주지만 사람을 언제나 더 향상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고통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 주기도 하지만 나를 파괴하시도 합니다. 성공은 마음을 자부심에 팔리게 하기 때문에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지 못합니다. 일산의 권태는 불편과 불만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자신을 발견하게 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자신을 발견하는 유일한 길은 극심한 슬픔을 통해서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성경과 인간의 경험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당신은 극심한 슬픔을 겪고 자신을 발견한 사람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당신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극심한 슬픔을 겪어 보지 못한 자는 사람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습니다. 극심한 슬픔속에서 당신을 받아들였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다른 이들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