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출애굽기 28:21, 29)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새긴 두 개의 보석이 제사장의 어깨에 부착되었습니다. 또한 주님은 12개의 보석에 각 지파의 이름을 보석에 기록하게 하셨고, 그것을 제사장의 가슴에 붙이라 하셨습니다. 이 “영원한 기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사야 40:11)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대제사장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품에 안으십니다. 사랑의 가슴으로 품으십니다. 제사장의 의복은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확신을 더해줍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5-16)
여기에 신자의 자존감의 근원이 있습니다. 참된 성도의 자존감은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자기 확신, 자기 사랑, 자신의 선행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보배롭게 보시는지 깨닫고 감격하는 데에서부터 자존감의 회복은 시작됩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요한계시록 21:12)
열두 지파 이름은 대제사장의 의복에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 두 문들에도 12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열 두 지파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믿으며 확신 가운데 거하십시오.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믿으며 즐거워하십시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이름이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의 손바닥과 하늘나라의 문 위에 기록될 수 있을까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27)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4)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가 예수님과 연합되어 그리스도로 옷 입고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다고 알려줍니다. 로마서 13장 1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성도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을 도운 성구입니다. 우리를 죄의 정욕에서 건져주는 것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 즉 그분으로 옷 입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만이 대제사장의 의복에 박힌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자매여! 세상과 마귀는 우리를 깎아내리려 하지만 예수께서 당신을 보석처럼 대하시니 이 믿음 안에 굳건히 거하십시오. 친구여! 예수님 없는 착함은 누더기에 불과합니다. 자기 의라는 누더기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으로 옷 입으십시오. 우리를 천국과 참 평안, 구원의 확신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을 입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