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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3일 새벽 경건회 [찬송: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설교: 고린도전서 9장 24-27절]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고 전도자로서 내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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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께 사랑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고린도전서9:24-27

[개역개정]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NIV]
24. Do you not know that in a race all the runners run, but only one gets the prize? Run in such a way as to get the prize.
25.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They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not last; but we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last forever.
26. Therefore I do not run like a man running aimlessly; I do not fight like a man beating the air.
27.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9:24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절제와 노력이 필요함을 권면하기 위하여 운동 경기를 비유로 들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매 2년마다 열렸던 '이스미안 경기'(Isthmian games)가 올림피안 경기(Olympian games), 피티안 경기(Pythian games), 네미안 경기(Nemean games)와 함께 그리스 사대 경기 중 하나이다. 이스미안 경기에는 주로 격투기, 경마 등이 진행되었다.
 운동장에서 - '운동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타디오'(* )는 606.75피트(feet)로 약 200m 길이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것이 경기장, 곧 '스타디움'(Stadium)으로 뜻이 굳어졌다. 그 이유는 당시 그리이스 도시들에 있는 경기장들이 한스타디오(약 200m)로 규격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 이 말은문자대로 육상 경기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상을 얻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오직 한사람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에는 운동 경기에서 승리하면 상금을주지 않고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수여했는데, 모든 경주자는 이러한 명예를 획득하기 위해 경기에 참가했다. 따라서 바울이 의미한 것은 경기에서 우승자가 질주하는것같이 고린도 교인들도 상을 얻겠다는 목적 이외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목표만을 향해 노력하라는 것이다(Godet).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 '이기기를 다투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고니조메노스'(* )는 동사 '아고니조마이'(* , '경쟁하다', '격렬히 몸부림치다')에서 파생된 말로서 본절에서는 경주에 참가하는 모든 자를 가리킨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 '절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크라튜에타이'(*   )는 고대 그리스의 운동 경기자들이 사용했던 전문 용어였다. 그들은 통상 10개월 가량의 고된 훈련을 받았으며 음식이나, 오락, 수면 시간 등 모든일에 있어서 자신을 절제하여야 했다.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 고린도 지역에서 개최되었던 '이스미안 경기'에서는승자에게 월계수나 솔잎, 또는 어린 파슬리(parsley) 잎을 엮어 만든 화환(wreath)을머리에 씌워 주었으며 올림피안 경기에서는 우승자에게 야생 감나무 잎으로 엮은 화환을 씌워 주었다. 이처럼 나뭇잎을 엮어 만든 그런 면류관은 경기자들에게 최고의 영예(榮譽)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면류관은 금방 시드는 것이었고 그것을 쓴 우승자의 영예 역시 덧없는 것이다.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 운동 경기자가 목표하는 면류관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면류관은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운동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 못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9:26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 '향방 없는'의 헬라어 '아델로스'(* )는 '목표 없는', '불분명한'의 뜻을 갖는다. 달리기 선수들이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경기에 임하는 것을 비유로 삼으면서 바울 자신도 목표와 방향을 확고하고 분명하게인식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음을 말한다.
 싸우기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퓌크튜오'(* )는 '퓌그메'(* ,'주먹')와 '퓌크테스'(* , '권투 선수')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이것은 '권투시합'을 가리킨다. 바울은 여기에서 달리기 경주에서 권투 시합으로 비유를 바꾸어 표현의 폭을 넓히고 있다.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 이것은 권투 선수들이 시합을 하기 전에 상대방 없이 혼자서 연습하는 것을 표현한 말로 전문 용어로 '스키 아마키아'(* ,'싸움')라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싸움이 상대방이 없는 공허한 것이 아니라분명한 대적(對敵)이 있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 같다.

=====9:27
 내가 내 몸을 쳐 - '쳐'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피아죠'(* )는 '휘포'(* , '...아래')와 '옵스'(* , '눈')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눈 아래 부위를 친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매우 사실적인 표현으로서 당시 권투 선수들이상대방의 얼굴 부위를 공격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권투 시합을 연상하면서 자신의 싸울 대상이 자기 몸이 라는 것을 보여준다. '몸'에 해당하는 '소마'(* )는 고린도전, 후서에서 '영'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는 세속적이고도 육체적인 욕구를 제어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기 원하는 자신의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복종하게 함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라고고'(* )는 '둘로스'(*  , '종', '노예')와 '아고'(* , '데려오다', '끌고 오다')의 합성어로서전쟁에서 승자가 패자를 종으로 끌고 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몸을 쳐서 패배시킨 후 이제는 온전히 복종시켜 종이 되게 하였다는 말이다. 바울은그의 육체적인 본성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죄의 성향과 욕망까지 복종시키려고 하였다(Hodge).
 남에게 전파한 후에 - '전파한'의 헬라어 '케뤽사스'(* )는 헬라어 '케뤽스'(* , '전달자')에서 유래하였다. 운동 경기에서 '케뤽스'의 임무는 경기규칙을 설명하고 선수들을 소집시키며 나팔을 불어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일 등을 하였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달자인 '케뤽스'에 비유하였다.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 '버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도키모스'(* )는 '도키마조'(* , '조사하다', '시험하다')에서 파생된 말로서 '불합격자'의 뜻을 갖는다. 또한 이 단어는 옛날 화폐로 사용된 주화의 무게를 달아서 제 무게를 지닌 주파와 그렇지 못한 불량 주화를 가려내는 것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었다.바울이 버림받는다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 두가지 해석이나올 수 있다. (1) '구원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는다'는 의미이다(Lenski, Godet). (2)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Morris).위의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바울은 자신이 구원 얻은 자로서 주님을 마땅히 섬기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영광스러운 면류관(고린도 전서 9:24-27)

이 절에서 바울은 자기가 가진 격려를 암시한다. 그는 영광스러운 상과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보고 있었다. 이 제목에서 바울은 자기를 경주하는 자와 싸우는 투사에 비교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고린도 지협 경기를 잘 알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24절). 너희가 경기에서는 다 달려도 한 사람이 이겨서 상을 받지 않느냐.

Ⅰ. 그들의 의무를 촉구한다.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여라." "그리스도인의 경주는 너희의 경주와는 다르다. 너희들은 모두 상을 받기 위하여 달린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열심히 힘껏 달릴 필요가 있다. 모두가 상을 받을 여지가 있다. 잘 달리면 꼭 얻는다. 고상한 경쟁심은 있어야 하고 서로 앞서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일등을 획득하여 신령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상을 받으면 영광의 경주가 된다. 나는 달릴 목표를 세웠다. 너희도 그렇게 하라. 나를 따라서 달려라." 영원한 상을 위하여 목사들을 따라서 달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교인들을 인도하는 것은 목사의 명예요, 의무이다.

Ⅱ. 바울은 온유를 통하여 자기의 본보기를 그들 앞에 분명히 제시한다.

1. 경주를 하는 사람은 먹는 것에 규칙적이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절) 너희의 운동에 있어서 투사와 레슬링 선수는 음식과 훈련에 엄격하다. 그들은 철저하다. 음식을 삼가하고 자유를 제한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앞에 놓인 상을 위하여 그리고 그렇게나 영광스러운 경주를 위하여 자기의 자유를 제한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경주와 싸움을 위하여 엄격한 음식과 극기를 한다. 너희도 나와 같이 훈련을 하여라. 이방인의 제물을 삼가하지 못하면 하늘의 면류관을 얻기 어렵다.

2. 그들은 절제할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적응한다. 연습에서 싸우는 사람은 허공을 치면서 팔을 휘두르면서 접근전의 구타를 연습한다. 그리스도인 전투에는 그런 연습이 없다. 항상 접근전을 한다. 원수가 항상 목전에 있어서 공격한다. 이 때문에 싸움을 쉬거나 군기를 내려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허공을 치는 그런 싸움을 하지 않고 전력으로 접전해야 한다. 바울이 여기에서 언급하는 원수는 육체이다. 마치 권투시합에 있어서와 같이 이 육체는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이 육체는 육적인 경향과 기호이다. 이것들을 바울은 제어하고 정복하려고 하였다. 고린도 교인들도 바울을 따라와야만 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영혼의 유익을 원하는 사람은 육체를 쳐서 눌러야 한다. 육적인 정욕을 싸워 이겨야 한다. 형제의 영혼을 위험하게 하면서 탐욕적인 식욕이나 이방인의 제물로써 그들의 육욕을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몸은 마음에 봉사하여야 하고 마음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Ⅲ. 바울은 그의 충고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촉구한다.

1. 그들은 모든 어려움과 수고를 다 겪으며 연습한다.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25절). 경기에서 이긴 그들은 시들게 되는 올리브 나무 가지나 잎으로 만든 월계관을 쓴다. 그러나 그리스도은 하늘 나라에 예비되어 있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목적에 두고 있다. 경주에서 패배하겠는가? 많은 군중과 혹은 시드는 풀잎의 관을 위하여 그들은 음식을 절제하고 달리며 고난을 당하는가? 권능의 재판장의 인정과 영원한 왕관을 받을 그리스도인이 육체의 경향과 죄의 얽매임을 풀기 위하여 열심히 달리지 않겠는가.

2. 세상의 경기는 불확실하다. 모두가 달리나 한 사람이 상을 받는다(24절) 모든 경주자는 수상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경주자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받도록 달려야 한다. 규칙대로 달려야 한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방향없는 것같이 아니하고"(26절) 규칙대로 달리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면류관을 받는다. 다만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규칙대로 끝까지 달리는가? 경주가 끝날 때 다 상을 받을 그리스도들이 더 열심히 달리지 않을까?

3. 바울을 육욕에 복종하는 위험성을 나타내 보인다. "내가 내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27절). 즉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절되는 것이다. avdokimoj 는 경기의 심판자가 면류관을 주지 않는 자이다. 이 경기에 대한 은유가 전 문장에 흐르고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구원의 전도자가 면류관을 놓칠 수가 있다. 남들은 천국으로 인도하나 자기는 도착하지 못한다. 바울은 이것을 막기 위하여 육체의 소욕을 정복하는 데 그렇게나 큰 고통을 겪는다. 남에게 전도한 후에 최후의 심판자에 의하여 버림을 받지 않도록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경외함이 사도에게 필요하다. 충성을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평민이야 얼마나 더 필요할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불신앙과 최후의 버림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안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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