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9편 22-28절
22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23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24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명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25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26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27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시편 기자는 배신자들이 저주를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22-28절).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이것은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절박함을 우리가 깜짝 놀라면서 느끼게 해주고" 우리가 세상의 불의를 안일하게 여기지 않게 해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고난의 자리로 이끌어 갔던 사건들에 비추어 생각하면 그들은 시인과 전혀 다른 자리, 즉 십자가 반대쪽에 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주께 앙갚음이 아니라 지지를 구하며 예수님이 그러셨듯이(눅 23:34) 목숨을 앗아 가려는 원수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행 7:54-60). 시편 기자는 악을 심판해 주시길 구하는 정당한 기도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그 심판을 스스로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황량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정의를 추구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Prayer
주님, 정의를 구하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도, 거기에 단 한 줌의 복수심이나 그릇된 동기도 섞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무런 공로 없이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입었음을 기억하고 내게 못된 짓을 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는 이들을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잘못을 바로잡는 열정과 용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