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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9월 19일,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출생, "남편과 딸을 묻은 이국땅에 남아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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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로제타 셔우드 홀. 문제는 이런 손실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믿지 않는 데 있다.”


오늘은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이 태어난 날입니다. 1865년 9월 19일, 로제타는 미국 뉴욕 설리번 카운티의 리버티에서 출생했습니다. 의료선교사가 될 결심으로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에 들어간 그녀는 감리교에서 주관하는 뉴욕의 빈민가 시료원에서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을 만나게 됩니다. 선교사로 각기 다른 시기에 내한한 그들은 조선에서 결혼한 최초의 서양인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닥터 홀의 사망으로 로제타는 2년 5개월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출산하여 조선으로 데려온 딸 에디스마저 병으로 잃은 로제타는 고국에 계신 어머니의 부음(訃音)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로제타가 죽은 딸과 대화하듯 써내려간 일기를 살펴봅시다. 우울하게 시작한 일기는 희망으로 마무리 됩니다.

피치 부인은 엄마가 느끼는 이러한 아픔은 당연한 감정이라고 했다. 또한 누구도 엄마와 셔우드에게서 아빠와 에디스가 떠나간 일이 잘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예수님의 뜻으로 돌리고 예수님만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엄마가 그렇게 노력한 것은 다른 어떤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지, 내게 주어진 이 아픔이 하나님의 웅대한 계획 중의 하나라고 인식하여 감사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이런 시련을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더욱 더 잘 믿고 의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다. 이러한 내 심정은 기독교인인 선교사의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가장 두려운 시련이다. 엄마는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비뚤어졌는지를 알려고 노력하고 있다……하지만 문제의 하나는 이러한 손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가운데 하나라고 믿지 않으려 하는 데 있는 것 같다.[Sherwood Hall,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 김동열 역, 『닥터 홀의 조선회상』 (서울: 좋은씨앗, 2003), 199-200.]

로제타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은 철인(鐵人)이 아닙니다. 남편과 딸을 묻은 이국땅에 남아 봉사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나의 연약한 몸과 마음을 붙드시는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가련한 여인, 로제타를 강하게 하셨듯이, 주님은 지금도 그분의 자녀들에게 힘주십니다.

로제타는 특별히 정신적인 요소가 원인이 된 질병의 치료에서는 기도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광혜여원 환자 중에는 정신병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의학적인 치료와 동시에 기도도 필요하지만 기도에 더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의료진 양성의 첫 번째 문제는 여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여자 의사선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에 그녀는 선교부, 특히 장로회 선교부에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장로회에서는 여자 환자를 위한 여의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실제 병원을 찾는 기독교인 여자 환자들의 절반이 장로회 신자였고 나머지가 감리회를 비롯한 기타 교단 소속이었다……그녀는 광혜여원에서의 부인진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고 제목은 ‘무지와 잘못된 민간요법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이었다.[차신정, 『한국개신교 초기 그리스도를 나눈 의료선교사』 (경기: 캄인, 2013). 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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