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최치량, 12살 소년이 얻은 성경책”
오늘은 최치량(崔致良, 1854-1930)이 태어난 날입니다. 1854년 9월 22일에 출생한 최치량은 12살 때 토마스 선교사(Robert Jermain Thomas)의 순교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토마스가 뿌린 한문 성경을 만경대에서 주웠으나 두려움에 질렸기에, 그것을 영문주사(營門主事)였던 박영식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성경책을 도배지로 사용한 박영식은 말씀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의 집은 평양의 첫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후에는 장대현[章臺峴]교회로 불림)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장성하여 객주(客主) 일을 하던 최치량도 술을 끊고, 학습과 세례를 받았습니다. 평양 최초의 기독교인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후에 장로로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제너럴셔먼 호 당시 11세였던 최치량(崔致良)은 숙부와 함께 구경하러 갔다가 토마스 선교사가 뿌린 성경 3권을 얻어 가지고 돌아왔고……박영식(朴永植)은 사람들이 버린 성경을 수집하여 평양 대동문 안에 있던 자기 집의 벽지로 사용되었다. 그 후에……최치량이 박영식의 그 집을 사서 여관으로 경경하던 중 처음 평양을 방문한 모펫(Samuel A. Moffet) 즉 마포삼열(馬布三悅) 선교사와 한석진 목사 등을 투숙시키는 인연을 맺었다. 이들의 전도로 최치량은 평양 최초의 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으며, 그 집은 훗날 교회가 되었다.[유해석, 『토마스 목사전』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9), 248-49.]
1893년 6월 평양 널다리골 교회 첫 예배 참석자 7인 중에는 최치량이 있었습니다. 그는 1894년에 평양에서 기독교 박해가 일어났을 때, 체포되어 벌금 300냥을 물기도 했습니다. 한문성경을 던지고 죽임 당했던 토마스 선교사의 노고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자신이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도 주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하여 교황을 철저히 무력화 시켰노라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전도와 설교, 가르침과 권면은 예상치 못했던 12살 소년과 같은 이들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십니다. 문제는 늘 조금 기대하고, 얄팍하게 기도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나에게 있습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처참한 교회 박해가 평양에서 터졌다. 평양은 일찍이 그 부와 부도덕으로 악명 높았던 도시요, 한때 이곳에서 선교하던 감리교 선교사들이 보따리를 챙기지 않을 수 없었던 고약한 고장이었다. 그 불행은 청일전쟁 직전에 터졌다. 부호의 자제들이 다수 입교하였기 때문에 한번 일을 일으켜서 이득을 볼 것을 노려, 유교 전통의 숭앙과 외인 협잡배의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운 덕천부사(德川府使) 산덕균의 무고가 그 도화선이 되었다. 평양도 관찰사 민병석(閔丙奭, 1858-1940)이 엄명을 내려 그 해 4월 6일에 장로교의 한석진, 송인서, 최치량, 그리고 감리교의 김창식이 잡혀 가늠 못할 난타를 당해서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혼미해져서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는 폭행을 당했다.[민경배, 『한국 기독교회사』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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