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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1-6/2024년 2월 4일 주일 설교/불신앙에 놀라시는 예수님/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Faith, Firm Conf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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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6:1-6

[새번역]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4.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5. 예수께서는 다만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 밖에는, 거기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을들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가르치셨다.

[NIV]
1. Jesus left there and went to his hometown, accompanied by his disciples.
2. When the Sabbath came, he began to teach in the synagogue, and many who heard him were amazed. "Where did this man get these things?" they asked. "What's this wisdom that has been given him, that he even does miracles!
3. Isn't this the carpenter? Isn't this Mary's son and the brother of James, Joseph, Judas and Simon? Aren't his sisters here with us?"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4. Jesus said to them, "Only in his hometown, among his relatives and in his own house is a prophet without honor."
5. He could not do any miracles there, except lay his hands on a few sick people and heal them.
6. And he was amazed at their lack of faith. Then Jesus went around teaching from village to village.

예수님과 그의 고향 사람들 (마가복음 6:1-6)

Ⅰ.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향을 방문하시었다. 그 곳은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이 아니고 자라나신 곳인데, 그 곳 이름은 나사렛이다. 그 곳에는 예수의 친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고향에서 향민들로부터 생명의 위험까지 당하신 적이 있었다(눅 4:29). 그런데 지금 다시 그들을 방문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대단히 이상하리 만큼 당신의 원수들의 구원을 은혜스럽게 기다리고 구하고 계시었다. 이러하셨기 때문에, 비록 위험 속에 뛰어드는 격인 이곳을 또 다시 방문하신 것이며, "제자들도 좇으니"(1절) 이는 그들이 예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섰기 때문이다.

Ⅱ.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그 곳에 있는 회당에 들어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었다(2절). 그 곳에서는 다른 곳에서와 같이 많은 무리가 모여들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저들이 회당에 모여들기까지에는 말씀을 전하실 다른 기회를 얻지 못하시었다. 그리고 가날 그 회당에서 성경의 한 부분을 아주 명석하게 설명하여 주시었다. 오늘날 교회의 정기적인 집회에서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가르치심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Ⅲ.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대단한 찬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 그리스도께서 대단히 지혜롭게 가르치시니, 그들은 예수께서 교육을 받지 않으신 것을 잘 아는 고로, 어디서 이런 지혜를 "이 사람이 얻었느뇨?" 하면서 이상히 여겼다.

2.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가르치신 말씀을 확증하기 위하여 "그 손으로 권능을" 행하시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신적인 기원에 대해서 두 가지의 큰 증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두 가지 증거 중 하나는 복음을 깨닫게 해준 것같이 보이는 하나님의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에 대해서 확증하고 추천하는 일을 하는 것같이 보이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시는 복음에 대해서 처음에는 부인할 수 없었지만 결국은 받아 들이려하지 않았다.
Ⅳ.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그분에게 반대하는 편견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으켜 주려고 연구하였다. "이 사람의" 이 모든 "지혜"와 이 모든 "권능이"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만 집에서 교육받은 것뿐이고, 어디로 여행을 다녀온 일도 없고, 어느 대학교에 다닌 일도 없으며, 어느 유명한 박사의 밑에서 교육을 받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3절).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를 목수의 아들이라고 그들은 비난하였다. 그것은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그런 직업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더 비난하려고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고 한 것같이 보인다. 아마 우리 주 예수께서 당신의 사업을 위해서 공생애에 들어가시기 전에는 이따금씩 남의 일도 맡아서 하셨을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자기를 낮추"시었으며 당신 자신의 명예를 나타내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이 섬기러 온 종의 모습을 취하심 것이다. 우리의 구속주께서 그와 같이 낮추셨으니 그가 오실 때에 우리의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심으로써, "게으리지 말"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시었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원하시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생활 수단과 일에 고용되는 것이 오히려 아무런 생계의 대책이 없는 것이나 태만 가운데 스스로 방종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임을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빈둥거리는 습관처럼 해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유대인들에게는 이 점에 있어서 좋은 규율이 있는데, 그것은 학자가 되려는 젊은이들은, 마치 바울이 장막 짓는 일을 익힌 것처럼, 어떠한 기술을 익혀, 필요할 때에 일자리를 얻어 생활에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천대를 받는 직공들을 칭찬하고 그들의 손으로 노동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격려하여 주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소위 위인들은 그런 사람들을 멸시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비난한 또 한 가지는 예수의 친족들의 천한 신분에 대한 것이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형제들과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우리가 그의 친척들을 알고 있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대해서는 "놀라"게 되었지만(2절). 예수의 신분에 대해서 오해하고 걸림이 된 것이다(3절).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좋지 않은 선입관을 가진 것이며, 그리스도를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리스도께서 아무리 좋은 호감을 주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만일에 그들이 예수의 혈통을 모르게 되었더라면, 아니면 예수께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이 하늘에서 그들에게 바로 내려오시었다면, 아마 그들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를 극진히 환대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유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가 어디에서 오신 줄을 모르고 있었지만 예수를 배척하였던 것이다(요 9:29).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완고한 불 신앙은 결코 변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Ⅴ.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경멸을 어떻게 참으셨나를 아래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1. 그리스도께서는 평범한 말로 그것에 대해서 일부를 변명하시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록 합리적이 아니고 적당치 못했을지 모르나, 그들이 기대를 하였을 만하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4절). 아마 이 법칙에 대해서 예외도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 편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 말씀은 맞는 것이다. 목사들이 낯선 곳에서 보다 자기들의 고향에서는 환대를 받기가 어렵고 목회의 성공이 어려운 것이다. 어려서 친숙하게 된 분들에게는 멸시를 받게 되며, 출세 길에서 뒤진 사람들에게서는 시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가축 떼들을 사냥개에게 맡길 준비는 하면서도 그들의 영혼을 지도하는 아버지들에게 자기들을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우에 그리스도의 그 말씀을 어렵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말씀은 평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씀인 것이다.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 10:10).

2.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경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중에 얼마의 선을 행하시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악인에게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도 선을 행하시기 때문이다.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다"(5절). 비록 선을 행함에 있어서 칭찬은 고사하고 부당한 배척을 당하더라도, 선을 행하는 그 일에 대해서 기쁨과 만족을 갖고 자족하는 것은 관대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임을 명심하라.

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른 곳에서와 같이 그런 능력을 그곳에서는 많이 행하시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그들의 지도자들이 대중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편견을 갖게 한 이유로 말미암아 불 신앙이 그들을 지배하였기 때문이다(5절). 그것은 마치 불 신앙이 전능자의 손을 매어놓는 듯한 이상한 표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물론 그 곳에서도 다른 곳에서와 같이 많은 기적을 행하시기를 원하시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께 나와서 간구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은혜 받기를 위해 그리스도에게 요청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해 역사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위해 역사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은혜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불 신앙과 경멸이 그들에게 임하는 그 분의 은혜의 흐름을 막게 되며 그들 자신의 문에 빗장을 지르는 것이 됨을 유의하라.

4. 그리스도께서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6절).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신앙에 관해서 놀라시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세 번 볼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이며 낯선 사람인 로마 백부장의 신앙과(마 8:10), 가나안 여인의 신앙과(마 15:28), 당신이 고향 사람들인 이 유다 사람들의 불 신앙에 대해서 기이히 여기시며 놀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받는 것을 싫어하는 불 신앙과 같이 이상한 일은 없다.

5.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7절). 만일 우리가 원하는 곳에 선을 행하지 못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곳에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비록 벽촌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고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갖게 된 것을 기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부와 허영과 환락과 교활함이 적은 농촌 마을이 인구가 많은 도시보다 더 나은 환대를 받는 것이다.

마가복음6장1-6절 설교 20240204주일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6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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