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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9월 25일, 존 브라이트(John Bright, 1908–1995) 출생,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속과 약속의 역사, “구속사”(Heilsgeschichte)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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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존 브라이트, 이러한 언약과 더불어 유례가 없는 새로운 사회가 생겨났다.”

오늘은 존 브라이트(John Bright, 1908–1995)가 태어난 날입니다. 1908년 9월 25일, 존 브라이트는 미국 테네시 주 차타누가(chattanooga)에서 출생했습니다. 버지니아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박사학위 취득 후 구약학을 가르쳤습니다. 탁월한 성서 고고학자였던 존 브라이트는 스승 올브라이트(W. F. Albright)와 함께 성경의 역사성을 학문적으로 검증하는 일에 공헌했습니다. 열정적인 설교자이기도 했던 존 브라이트는 자신의 대표작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구약시대에 실존했던 약속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존재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핵심을 이루었던 인물들에 대해 전승되어 내려온 어떤 공동 경험의 기억 속에서 존재한다. 비록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세부적 사항들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역사적인 사건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히브리 노예들이 놀라운 방법으로 이집트로부터(모세의 영도 하에) 탈출하였다는 것과 그들이 얻은 구원은……여호와의 자비로운 간섭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근거가 없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네들이 그 후 시내반도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여호와의 백성이 되겠다고 언약을 맺은 사실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다. 이러한 언약과 더불어 그 전에는 유례가 없는 새로운 사회, 즉 혈연에 기초한 것이 아닌 역사적 경험과 도덕적 결단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가 생겨났다.[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 John H. Leith, Introduction to the Reformed Tradition, 오창윤 역, 『개혁주의란 무엇인가?』(서울: 풍만, 1989), 31에서 재인용.]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존 브라이트 역시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사와 신학을 연결하는 그의 연구 방법론에 관한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설로 여기는 흐름을 비판하고, 고고학적 연구에 기반하여 성경의 역사성을 주장한 면에서 존 브라이트는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연구실과 현장 속에서, 고대문자를 해독하고 유적(遺跡)들을 누비며 땀방울을 흘리는 성경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선물임을 기억합시다. 감사를 표하고 격려합시다.

 

이스라엘 역사의 ‘신학적’ 목적지는 무엇인가?……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속과 약속의 역사, “구속사”(Heilsgeschichte)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반역과 실패와 좌절과 가장 쓰라린 절망의 역사로도 제시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소망은 흔히 무참하게 꺾이고 미루어지고 기껏해야 일부 실현된다……다윗 가문에서 국가의 운명을 회복해 줄 군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열방들이 여호와의 권능 있는 역사를 인정하고 그분의 승리의 통치에 복종하기 위하여 모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징조들과 기사들을 수반하며 새로운 시대를 동트게 할 종말론적 개입도 없었다. 그러나 많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소망은 포기되지 않았고 오히려 강화되었다. 구약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박해 하에서 율법을 고수하며 마침내 때와 왔다고 확신하고 긴장된 눈으로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게 된다.[John Bright, A History of Israel, 엄성옥 역, 『이스라엘의 역사』 (서울: 은성, 2007), 5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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